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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걷기여행 - On Foot Guides ㅣ 걷기여행 시리즈
프랭크 쿠즈니크 지음, 정현진 옮김 / 터치아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프라하는 한마디로 걷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다. 어디를 가나 수백 년 된 예술 작품과 건축물, 살아 있는 역사를 품고 있는 이 중세 도시의 참모습을 경험하고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려면 걷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표지 날개 中에서).
책을 받아들고 일단 세계지도를 검색해 '프라하'의 위치부터 다시 확인해보았다. 유럽이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곳이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사실이 이 도시를 더욱 생경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낯선' 그 이국적인 향취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요즘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등장하는 '프라하'를 볼 때마다, 어쩐지 차가운 듯한 인상과 중세적인 분위기가 자아내는 고풍스러운 멋에 이끌린다. 한 눈에도 역사가 느껴지는 광장과 높게 솟은 건물 사이로 곡선을 그리며 좁다랗게 나있는 골목길,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돌다리 밑으로 유유하게 흐르는 운하를 볼 때마다 그 생경한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프라하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좀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터치아트에서 발간한 <프라하 걷기여행>이 내 눈길을 끈 것은, "이 책에 소개된 12개의 코스들은 모두 한두 시간 안에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문구 때문이다. 걷기여행의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장시간 걷는 고통'에 발목을 잡힌 경험이 있어 더구나 낯선 외국으로 걷기여행을 떠난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라하 걷기여행>을 보니, 걷기여행을 위해 억지로 짜맞춘 코스가 아니라 '프라하'야말로 걷기여행이 가장 안성맞춤인 여행지라는 것을 알았다. 첫째는, 역사,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은 여유롭게 둘러보아도 이삼일이면 충분할 정도로 프라하가 작고 조밀하다는 것, 둘째는 관광안내 책자에 나오지 않는 고유한 거리,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카페, 아름다운 조각상 등이 시내 여기저기에 숨어 있어 걸으며 감상을 하기 좋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프라하에서는 길을 잃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특히 구시가의 미로 같은 중세 골목에서는 더더욱 길을 잃기 쉽다고 하는데, 오히려 길을 잃었을 때가 프라하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하니, 시간이나 일정 따윈 잊어버리고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할일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프라하의 걷기여행>의 걷기 코스는 "말라 스트라니와 구시가, 신시가는 물론, 강을 따라 늘어선 흥미로운 장소들과 비교적 개발이 덜 된 구시가 동쪽까지" 소개하며,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트램이나 메트로 역 주변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 것이 특징이다. 코스마다 제공되는 "독창적인 3차원 고공 촬영 지도"는 프라하 걷기여행을 소망하는 이들에게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코스를 한 눈에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여름 걷기, 겨울 걷기, 주말 걷기, 주중 걷기, 어린이와 함께 걷기 등 다양한 걷기 Tip을 제공하는데, 그중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교회와 사원 등 수많은 실내 관광지는 계절과 상관없이 춥고 비가 오는 날을 위해 아껴 두는 게 좋다"는 Tip을 꼭꼭 챙겨두었다.
어느 곳이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상하게 프라하는 연인과 함께 가고 싶은 여행지이다. 다른 도시처럼 혼잡하고 요란한 도시가 아니어서 혼자 여행하기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조용하고 낭만적인 분위기 이면에 어쩐지 외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공산당 전제정권이 남긴 우울한 잔해 때문일까, 두 세계 대전 사이 체코슬로바키아가 명실상부한 '유럽의 중심'이었다는 이제는 지나버린 옛 명성의 그림자 때문일까, 보헤미아 최고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과 그 낡은 유산 위로 우뚝 솟아오른 자본주의 성채가 뒤섞여 과거와 현재가 교차해 흐르는 프라하에 가면 들뜨기보다 외로워질 듯한 예감이 든다.
코스 중심의 <프라하 걷기여행>은 구체적인 여행 정보가 비교적 단순하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이 도시의 성격과 분위기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듯하여, 프라하의 매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며,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