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
서진영 지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요즘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만들었다는 현빈의 트레이닝복"이 장안의 화제이다. 비록 트레이닝복이지만 "40년 동안 트레이닝복만 만들어온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만들었다"는 드라마 속 대사에서 우리는 그것이 고가의 명품임을 눈치 챌 수 있다. 이 책은 먼 나라 이태리 장인의 솜씨에는 열광하면서도 정작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장인은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은 여행 에세이 형식으로 '우리나라의 공예 무형문화재 12인의 인터뷰'를 담아내었다. 12장인의 소박하지만 심지 곧은 삶과 장인 정신으로 빚어진 명품 공예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지만, 보도 기사 같은 딱딱함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쓴이의 따뜻한 심성과 개성이 더 두드러지는 에세이이기도 하다. 자칫 통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인터뷰'를 촉촉한 감성으로 맛깔나게 들려준다.

공예 무형문화재 12장인의 공예품들은, 지금은 시대가 변하며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옛 것' 취급을 받고 있지만, 기계로 찍어내는 상품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숙련된 장인의 땀방울과 옛 선인들의 놀라운 지혜와 우리 핏줄 속에 흐르는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운> 명품들이다. 특별하게 만들어지는 공예품이지만 우리의 소박한 일상과 맞닿아 있어 더 빛나는 그런 명품들이다. 사기장 방곡 서동규 선생은 간혹 "새로운 작품 안 만드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속이 상해 죽겠다고 한다. "선생의 손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들은 대부분 그릇이다. 더 넓게 말하면 생활자기. 물론 작품도 만들지만 1년 내내 작품 한 점에 공을 들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더욱 잘, 더욱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총 4개의 카테고리로 - 衣(한산모시짜기, 염색장, 침선장), 食(옹기장, 사기장, 나주반장), 住(소목장, 염장, 나전장), 佳(백동연죽장, 낙죽장도장, 배첩장) - 나누어 담아 장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공예품들은 하나 같이 장인 정신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을 만큼 과정 하나 하나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고, 까다로울 수가 없다. 어느 한 과정도 쉬이 넘어가는 것이 없다. 어려운 과정은 적당히 생략하고, 까다로운 작업은 대충 마무리를 해도 비슷한 물건을 흉내 낼 수 있을 터인데, 오히려 그 어려운 과정을 즐기듯 정성을 다한다. 효율성의 가치보다 땀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장인의 정신인 게다. 바로 그런 정신과 정성이 '지천에 널린 대나무와 무명실이라는 소박한 재료'로 만든 물건을 특별하게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앞에 서면 마음까지 경건해지는 그 빛나는 정신과 솜씨를 이를 후계자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한산모시짜기 방연옥 선생은 "어쩌다 시장갈 때 한 번씩 모시 일을 하는 그 마을 아주머니 집에 들러 일을 거들어 준 것이 전부"였는데, "어느 날, 이 모시 아주머니가 후계자를 둬야겠는데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넌즈시 물어"본 것을 계기로 나이 마흔이 넘어 모시짜기를 배웠다고 한다.

장인으로 인정받기까지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12장인의 인생은 그분들을 '그것밖에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버린 듯하다. 대기업들도 날림으로 집을 짓고, 날짜 지난 바케트빵이 마늘 빵으로 둔갑을 하고, 남의 디자인을 베낀 상품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되고, 생산지를 속이는 것쯤은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는, 자부심도, 양심도 없는 세상을 부끄럽게 만드는 '바보'들이다. 미안한 것도 모를 만큼 심장이 더 딱딱해지기 전에,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마음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아직 우리에게도 희망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은 뭐든 너무 쉽게 만들어요. 화려하고 당장에 보기는 좋은데 유행을 타지요. 재료도 좋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쓰거든요. 오래가는 법이 없어요. (...) 이래서는 후대의 우리 자손들이 우리를 추억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아요.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4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