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 유년의 상처를 끌어안는 치유의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책과도 같다. "그중 하나는 낯선 저자, 이를 테면 부모나 형제자매 또는 친척이 쓴 것이다. 당신은 이 첫 부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당신은 이 첫 부분의 문체를 받아들여야 하고, 심지어 그 내용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그것을 편집하거나 정정할 수도 없고, 보완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당신 삶 중 두 번째 부분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도 낯선 저자들이 책을 쓰게 할지, 직접 쓸지는 당신이 결정해야 한다"(51-52).

 

심리치료 분야의 책 중에 가장 추천할 만한 책을 만났다. 내가 찾던 책이다. (공신력은 없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아낌 없이 별 다섯을 주고 싶은 책이다. 처음 심리학 이론을 배우고,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그것은 마치 마법처럼 보였다. 남편과의 문제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분이 어린 아이가 되어 엄마를 원망하며 엉엉 울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문제의 원인이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래도록 풀 수 없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깊이 알아갈수록 마음이 언잖아지기 시작했다.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중독 현상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고, 모든 것을 어린 시절의 상처, 양육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태도를 보며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끊임없이 '상처'를 들쑤시며, 온통 상처 받았다고 아우성 치는 소리에 지쳐갔다. 심리학과 가장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모든 문제가 '개인적 차원'에서만 다뤄지는 것에도 괜히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심통도 났다.

문제는 오늘의 '불행'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우리가 받은 '상처'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는 심리요법가 파울 바츠라비크의 말을 인용하여, 그러한 태도가 어떤 잘못을 불러올 수 있는지 정확하게 지적해준다. 파울 바츠라비크는 말하기를, "왜 불행한지 해명하려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한다. "해명에 대한 욕구는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 우리를 희생자로 느끼게 만들고 과거에 매달리게 만들고 과거의 일을 현재 문제의 원인으로 돌리게 만들 수 있다"(200-201)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는 어떤 책보다 '어린 시절'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남긴 '생물학적 흉터'가 오늘 우리의 삶을 어떻게 지배할 수 있는지 그 막강한 영향력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메릴린 먼로, 로미 슈나이더, 마이클 잭슨, 캐럴 대처가 어떤 대가를 치루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책은 "당신의 불행은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 때문이다"에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 우르슬라 누버는 독일 최고의 심리상담사이지 부부치료 전문가라고 한다. 그는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를 통해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심리학 이론을 집대성하여, 어린 시절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교류분석 이론을 비롯하여 요즘 한창 연구되고 있는 '회복력'까지 그의 통찰 안에 녹아지고 있다.

"어린 시절은 발달과 인격 형성의 토대라 할 수 있다. 정신적 지향점이 되는 소중한 사람을 어린 시절에 어떻게 만나는지, 이들이 얼마만큼 관심과 애정을 보였는지, 우리가 그것을 얼마만큼 느꼈는지 등이 우리의 생물적 특성과 함께 작용해 현재의 우리를 만든다"(48).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과거를 돌아보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는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나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그래서 지금 요 모양 요 꼴이다"라고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린 시절이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48).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가 보여주려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어린 시절의 '저주'를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여기고, 어린 시절이 불행하면 평생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247) 관점과 태도를 수정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51).

심리학 관련 서적을 읽을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에'만' 주목했다. 오늘 내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나쁜 기억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는 반대로 상처보다 좋은 기억을 더 많이 떠오르게 해주었다. 그동안은 항상 '둘째로 자란 서러움'만 가득했는데, 이 책은 '둘째로 자라면서 갖게 된 장점', 선생님이 해주셨던 칭찬 한 마디, 스스로 자랑스러웠던 순간, 내가 이룬 성취들의 기억을 찾아주었다.

정신분석학자 제임스 힐만은 "어린 시절 자체가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보는 눈이 인생을 결정한다"라고 말한다. 또 "트라우마 자체가 우리에게 입힌 상처보다 어린 시절을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불필요한 재앙(이 때문에 비뚤어진 사람이 되었다)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이 입힌 상처가 더 크다"(329)라고 강조한다. 또 하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기억은 영향을 받기도 하고 끼워 맞춰지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한다"(229)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때 받았던 깊은 상처 때문에 여전히 힘든 오늘을 살아가기도 한다. 심리학 이론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어린 아이'의 존재를 찾아주었다. 우리가 내 안의 '어린 아이' 물론, 상대 안에 숨어 있는 '어린 아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래서 그 '어린 아이'를 달래줄 공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불필요한 갈등과 사소한 오해를 없애고 한층 더 친말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어린 시절을 이해하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에서 처럼, 불행의 원인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바꿀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작업말이다.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를 읽는다면, 더 이상 오늘의 불행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느냐는 것은 우리 자신에 달려 있다. 선택은 우리 몫이다.

"도대체 어린 시절 어디에 이런 힘이 있을까? 어떻게 그것이 다 큰 우리를 지금도 지배할까? 명답이 하나 있다. 우리가 그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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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0 1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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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5 1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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