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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ㅣ 꿈결 비단결 우리 그림책
이철환 글, 장호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를 발견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면, 어쩐지 세상이 온통 들떠보입니다.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내 마음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둥둥 떠오릅니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면, 어쩐지 누군가를 찾고 싶어집니다. 여기 저기 왁자지껄한 송년 모임을 보면, 그리운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가봅니다.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는 12월이면, 부러운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극장가에서 쏟아져나오는 연인들도 부럽고, 백화점에서 선물을 가득 안고 나오는 사람들도 부럽고, 일출을 보기 위해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낭만적인 함박눈, 훈훈하게 울려퍼지는 구세군의 종소리, 선물을 들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분주한 발걸음,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수다로 가득찬 식당들, 새로운 달력과 새해 계획으로 들뜨는 하루 하루, 내가 그리는 겨울 풍경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눈(eye)은 내가 원하는 것, 꿈꾸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경제가 어려운 것 맞아?' 할 정도로 부러운 풍경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이 겨울이 더욱 추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겨울이라 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얼마 전, 어느 대학의 교수님이 '사진의 정치학'이라고 하시며 유명인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연구실에 걸어두는 모습을 보고, 그 역겨움을 표정에서 숨기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이 되면, 소외되고 외로운 이웃을 위한 나눔 행사가 참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형 현수막을 걸어두고, 선물 상자를 가득 쌓아올리고, 그 앞에서 무엇인가를 전달하며 사진도 찍습니다. 외롭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은 조심하지 않으면 받는 이들에게 오히려 굴욕감만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해도 그런데, 아예 대놓고 홍보와 과시를 목적으로 한 나눔이라면 받는 사람의 마음이나 기분이 어떨까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은 나눔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아니,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다시 자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자장면을 두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형편이지만, 즐거워 하는 동생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굶어도 웃을 수 있는 누나의 미소가 배불러도 행복하지 못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책입니다. 이 겨울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인간이 사는 세상에 내려와 죄가 다 씻길 때까지 어려움에 처한 인간들을 도우라는 벌을 받게 된 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 죄가 용서되고 천사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떠나면 어려움에 처한 이 사람들은 누가 도와주나요?"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웃을 주었단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은 바로 그 '이웃'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줍니다. 우리가 '이웃'으로 살아가는 방법과 의미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 책을 패러디한 듯한 한 대부업 광고가 요즘 한창 방송 중입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식당에 찾아와 자장면을 한 그릇만 시킵니다. 사정을 알아차린 주인 아주머니가 1+1 행사라며 자장면 두 그릇을 내놓는 광고입니다. 역시 '돈' 버는 사람들은 좋은 것, 사람들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가 봅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대부업 광고에 따다 쓰는 것이 좀 불쾌하기는 하지만, 이와 비슷한 버전의 이야기가 세상에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접했던,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우동집'이었거든요.
<연탄길>의 이철환 선생님이 글을 쓰시고, 2009 볼로냐 아동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수상한 장호 선생님이 그림을 그려주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은 좀 더 특별합니다. 시처럼 압축되어 있는 따뜻한 이야기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예쁜 그림이 수백마디 말보다 더 진한 감동과 교훈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지만, 누구나의 가슴에 간직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이 어째서 아름다운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해답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안에 들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