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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왜 우리에게 도덕이 화두일 수밖에 없는가?
현재 미국인 4명 중 1명이 정부 식량을 보조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ABC뉴스 인터넷판). 2009년 미국인의 15% 가량인 5천만 명이 금전 부족 등으로 필요한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는 '식량 불안'(food insecurity) 상황에 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자녀가 있는 가구 10곳 중 1곳의 아이들이 경제 사정 때문에 끼니를 거른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구촌의 최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나라, '아메리칸 드림'을 꾸게 해주었던 꿈의 나라 미국에서 4명 중 1명이 연방 정부 식량보조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지구촌에서 최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국민의 1/4이 식량 불안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책 <공감의 시대>에서 미국의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문화 대신 유럽의 포용적이고 배려적인 문화를 주목하며, 미국에 비해 유럽의 유소년기 빈곤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고 전했다.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적자생존 방식의 경제 패러다임은 부의 집중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소수 계층은 아프리카 난민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음식을 소비하는 동안, 한쪽 그늘에서는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신규 빈곤층이 날마다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는 도덕적 관점에서 미국의 (정치) 상황을 진단하고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 11월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 성공하면서 '도덕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일어났다. "출구 여론조사에 따르면 많은 유권자들이 다른 어떤 현안보다도 '도덕적 가치'에 기준을 두고 투표권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테러리즘이나 이라크 전쟁, 경제 등과 같은 주요 현안을 제치고 도덕적 가치가 표심을 좌우한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마이클 샌델은 "경제중심의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도덕성에 목말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가치는 결국 도덕일까? 절대이념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당위적'인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도덕'을 중심에 두고 <왜 도덕인가?>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시대를 역행하는 역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 상황을 진단하고 있는 <왜 도덕인가?>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결국은 도덕적 현안들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민주사회에서 왜 도덕적 가치가 중요한가? <왜 도덕인가?>는 자유민주의의와 자본주의가 만났을 때, 인간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복권 사업, 스포츠의 상업성, 공공기관의 상업화, 환경오염의 책임, 공정한 법 집행 문제, 시장논리, 존엄사, 배아 복제, 낙태와 동생애, 독점자본 등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들은 미국 사회 안에서 도덕적 가치가 처한 곤경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도덕적 가치가 왜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의 권리와 선택의 자유는 도덕적, 정치적 삶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규범이지만, 과연 그것들이 민주사회를 위한 적절하고도 충분한 기반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좋은 삶에 관한 올바른 정의 없이 공공생활에서 일어나는 난해한 도덕적 의문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논의의 핵심에 자리잡은 의문들이다.
C. S. 루이스 이래 최고의 변증가로 인정받는 래비 재커라이어스 목사는 그의 책 <위대한 장인>에서 에덴 동산에 있었던 선악과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담(인간)을 지으신 후, 아담(인간)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아담(인간) 앞으로 이끌어오셨다. 그리고 아담이 부르는 이름이 곧 그 생물의 이름이 되었다.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재정의할 수 있는 권리를 아담(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아담(인간)에게 재정의를 금지하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선악과'라는 것이다. 도덕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이다. 인간이 마음대로 재정의할 수 없는 한 가지, 그것은 바로 '도덕적 가치'라는 것에서 새삼 희망을 느낀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사회에서는 집중된 부가 최대 권력이 된다. 돈 있는 사람들은 공정해야 할 법도 인간 사회의 모든 제도도 자신들에게 유익하게끔 재정의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선과 악의 기준도, 도덕적 가치마저도 자신들 편의에 맞게 재정의하려 든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각 분야가 도덕에 기반해야겠지만, 도덕적 가치에 기반을 둔 정치가 가장 시급한 현안이 아닐까 싶다. 물론 미국이나 우리나 정반대의 정치현실이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지만, 도덕적 가치를 기반한 정치가 토대가 되어준다면 인간 사회를 적절하게 조율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시작으로 '도덕'이라는 이슈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사회 곳곳에서 불일듯 일어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