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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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연 적절한 시기에 지구적 차원의 공감에 도달하여 문명의 붕괴를 막고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이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향해 던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7).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역설적 긴장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개인의 섬에 고립된 채 외로움이라는 병에 시들어가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서슴치 않는 모습이 우리가 그리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닌가. 제러미 리프킨은 이러한 현대인의 믿음을 한 번에 뒤집어 엎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책 안에서 "인간이 본래 공격적이고 물질적이고 실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오래된 믿음"을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공감하는 종(種)이란다. '과연?'이라는 의문이 앞섰지만, 그의 설득력이 대단하다! '공감'이 인류의 문명을 진화시켜왔다는 <공감의 시대>의 증거들을 보면, '공감'은 인간의 능력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능력이며, 모든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조건이라는 그의 주장에 빨려 들어가듯 공감하게 될 것이다.

적자생존이라는 생물학적 진화의 본성에 대한 오랜 통념이 여지 없이 깨어지고, 인간이 오랜 기간 서로 돌보고 함께 놀고 친사회적으로 행동하며 지냈다는 깨달음이 새삼스럽니다. 인간이 동료 의식을 유전적으로 타고났으며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 여긴다는, 공감 의식이라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의 '발견'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공감 의식이라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믿어온 '경제사'를 다시 쓰게 만들고 있다. <공감의 시대>는 네트워크식 사업 방식이 노골적인 이기심을 바탕으로 하는 기존의 시장 가설을 흔들고 있고 전한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는 무서운 속도로 세계인을 하나로 이어주며 지구 차원의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있다.

문제는, <공감의 시대>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적자생존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 오픈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알리는 <공감의 시대>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적 차원의 공감 의식에 바짝 다가선 만큼, 우리 자신의 멸종도 가까워졌다는 역설 때문이다. 공감 의식의 발전과 자아의 개발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인간의 여정을 이끄는 사회구조를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드는 현상을 수반한다. 그런데 문제는 공감 의식이 커질수록 지구의 에너지와 그 밖의 자원의 소비가 급증하다는 데 있다. 공감적 감수성이 고조될수록 엔트로피 증가가 초래하는 재앙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류의 미래는 공감-엔트로피의 역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고 전한다.

<공감의 시대>는 바로 지금이 새로운 에너지를 바탕으로 분산 자본주의라는 3차 산업혁명을 꽃 피우기 시작할 때라고 말한다. 인류사는 새로운 에너지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맞물려 훨씬 복잡한 사회를 창조해냈음을 갈파한 저자는 분산된 정보통신 혁명이 21세기 분산 에너지 제도의 길을 닦았다고 분석한다. 분산 정보, 분산 커뮤니케이션, 분산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3차 산업은 협동적인 동시에 분산적이고 비위계적인 사회로의 전환을 가져올 것인데, 그런 사회가 곧 공감 사회라는 것이다.

공감 사회는 보다 높은 세계시민의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공유된 사회 공간에서 높은 삶의 질을 창조하려면 사회적 자본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적 자본에도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더 이상 적대적 경쟁 상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는 의식이 요구된다. 공감-엔트로피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차원 수준 높은, 그야말로 제대로 된, '공감'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이다.

<공감의 시대>는 제러미 리프킨의 '종합판' 같은 서적이다. <소유의 종말>, <수소 혁명>, <유러피언 드림>, <엔트로피>까지 그의 주요 이론이 <공감의 시대> 안에서 종합되며, '공감'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낸다. 인류를 종과 횡으로 이렇게 관통할 수 있는 그의 통찰력이 더할 수 없이 부러울 뿐이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고 재미있다. 게다가 분야를 막론하고 적용 가능한 사상이라는 사실이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어떤 분야에 있든지 흥미롭게, 그러나 진지하게 읽으며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어온 방향과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이해하는 가운데,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해줄 것이다.

지금까지 미래 사회를 예측한 어떤 이론보다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미래 사회를 예견하는 책을 읽으며, 미래를 이렇게 기대해보기는 처음이다. 이것이 내가 그의 예언을 지지하고 싶은 한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문화를 버리고 자신 안에 내재된 '공감 의식'을 화려하게 꽃 피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쩌면 인류는 그동안 이기적인 욕구를 위해 투쟁하고, 쾌락을 극대화하고, 성적 욕구에 집착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공감의 시대>는 인류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거대한 티핑포인트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라는 자각이 우리의 본성과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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