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인상주의 : 경계를 넘어 빛을 발하다 - 19C 그림 여행 마로니에북스 아트 오딧세이 4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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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와 함께 떠나는 매혹적인 19C 그림 여행! 

 
나에게 미술 작품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가장 처음 이름을 외운 예술가는 아마도 초등학교 시험에 단골로 등장했던 조각가 로뎅이 아니었나 싶고, 다음으로 이름을 외운 예술가는 당시 화가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피카소였을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난해한 것이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땐, 진짜 같은 그림, 즉 실재를 모사한 듯한 그림이 최고의 작품으로 보였다. 그러나 미술을 알게 되면서 실재 그대로의 모사가 아니라, 작품에 담긴 과장이나, 색감, 빛과 어둠, 곡선, 비율 등의 표현에 작품 고유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정교한 기법은 하나의 과학이었으며, 예술가의 상상력은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었다. 인체의 비율이라든지 각도라든지 원근법이라든지 알면 알수록 그림에 도입된 과학적 기법이 놀라웠고, 붓질 하나 하나에 숨겨진 '의미'는 수수께끼 놀이처럼 호기심을 자극했다.

처음 그림에 흥미를 가졌을 때는, 감상보다도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를 알아맞추는 일이 가장 재미있었다. '아는 척'을 하며 우쭐대는 유치한 허영심 때문이었지만,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자주 찾았던 우리들(친구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유희였다. 아직도 그림을 감상하는 일에 있어서는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요즘 느끼는 또다른 재미는 그림에 대한 다른 사람의 감상을 '읽는 일'이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그것처럼, 그림을 '읽어내는' 전문가들의 해설이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마로니에북스에서 발간한 <경계를 넘어 빛을 발하다 - 낭만과 인상주의>는 바로 그런 즐거움이 가득한 책이다.

<경계를 넘어 빛을 발하다 - 낭만과 인상주의>는 서양 미술의 격변기라고 일컬어지는 19세기의 흐름을 보여주면서도 미술 사조 중 미술 사상 가장 혁신적인 형태의 회화라 평가되는 낭만주의와 인상주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은 <주요 용어>, <예술 중심지>, <대표적 예술가>라는 세 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나자렛파, 순수주의, 비더마이어, 이리엔탈리즘, 라파엘 전파, 사실주의, 마키아이올리,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점묘주의, 상징주의, 미술공예운동, 나비파, 스카필리아투라, 분할주의, 분리주의를 설명하는 <주요 용어>는 사조 설명과 함께 대표 작가의 작품 설명을 곁들이여 그 특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른 책들과 차별적인 것은 <예술 중심지>에 대한 설명인데, 문화 예술의 중심 도시 뿐만 아니라, '마음의 장소'라 하여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특별한 장소'가 등장하는 것이 이채롭다. '알프스 산맥'은 같은 대상이라도 화가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다양하게 포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며, 19세기 세계의 해상무역을 지배한 유럽열강이 그려낸 '바다와 대양'은 해전이나 탐험가들의 영웅적 행위를 기념하는 역사적 주제, 신비하고 매혹적인 장소로서의 바다, '선박-초상'과 해군을 전문적으로 그린 그림 등 세 종류로 나누어지는 것이 흥미롭다(152). 이밖에 기차와 기차역, 아카데미와 박물관까지 '말' 없는 예술이지만, '거짓'이 없는 그림은 당시 사회와 소통하는 훌륭한 매개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대표적 예술가> 파트는 에피소드 형식의 간략한 설명이 화가와 작품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그 '특징'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특별히 화가들이 집중했던 그림, 다시 말해 어떠한 주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해냈는지를 알게 되어 좋았다.

처음 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몰라 많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림 앞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그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아무리 보아도 미처 알 수 었었던 것들을 설명해내는 전문가들이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요즘처럼 세상살이가 팍팍할 때는 할 일 없이 그림이나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게으른 인생처럼 생각될 때도 있다. '놀이'도 효율과 유익을 계산하는 시대이다 보니 한가한 시간이 오히려 초조함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림을 할 일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조용히 평온이 깃드는 것을 느낀다. <경계를 넘어 빛을 발하다>는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무엇인지 맛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책에 담긴 '글씨'를 읽지 않아도,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 그림의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된다.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그림 여행, 이 호사를 한 권의 책으로 누릴 수 있다! 이런 사치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여유이자, 안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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