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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좌파 : 세 번째 이야기
김규항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그대, 꿈꾸고 있는가?
"우리는 '개선된 세상'이라는 몽상을 버리고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해야 한다"(217).
쇠사슬말고도 잃어버릴 것이 생긴 것일까. 지배계급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서도 좌파 지식인의 글을 읽으며,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니 말이다. (신앙적으로는 견해가 다른 것도 있지만)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조용히' 살고 싶은 이 게으름은 또 무엇인지. 뜨거운 마음으로 읽었으나 여전히 구경꾼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나의 허영을 들킬까봐 이 글을 쓰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김규항, 그는 어떤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는 무엇이라 말할까,가 궁금한 한 사람이다.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요란한 세상에 넌더리가 나지만, 그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게 된다. 허나 그것마저도 이 사람 앞에 서면 허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그는 삶으로 말한다. 언제나 한치도 위장도 허용하지 않고, 제 자신마저 속을 수 있는 위선의 정체를 철저히 경계하는 그의 시선은 사회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힘이 있다. 그는 이야기는 사회의 이야기이고,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다시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가슴 한 켠을 시원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처음엔 사회를 향한 그의 통렬함에 열광했지만, 곧 그 칼끝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인 것이다.
<B급 좌파> '세 번째 이야기'라는 이 책은 2005년(8월)에서부터 2010년(3월)까지의 그의 글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그 시간들 동안의 '일기와 단상'을 추가로 수록했다. 한 권으로 집필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 상당히 반복된다. 그런데 나는 그 반복이 좋았다. 그가 '한결같이', '일관되게' 사회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정리 되었기 때문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잘 읽힌다.
<B급 좌파>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가장 주요했던 것은 자본주의에 물든, 자본주의가 체화된 사회 안에서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분명한 '적'이 누구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위험해 보이는 세력은 '개혁'의 정체였다. 그는 "개혁이란 사회문화적 표피를 변화시키지만 경제 질서와 계급 관계라는 본질은 끝없이 후퇴시킨다"(28)고 말한다. 그것은 그의 글을 읽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보수 정당 간의 존재하지도 않는 차이를 부각하고 사소하기 짝이 없는 에피소드들을 끝없이 만들어냄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마치 그런 문제들이 세상의 실체이거나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대중으로 하여금 정작 자신들의 문제인 오늘의 참혹을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여기게 만드는 쇼의 의미를 말이다"(28).
그는 우리의 현실을 이렇게 분석한다. "극우파는 우파 노릇을 하고 개혁 우파는 좌파 노릇을 하니 정작 좌파들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은 투명인간이 되거나 기껏해야 '진보 개혁 세력'이라는 해괴한 신조어로 개혁 우파의 부록 취급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사이 개혁 우파는 한국 사회를 오롯이 신자유주의의 아가리에 집어넣었고, 인민은 '좌파 정권'이 가져다준 고단하고 존경 없는 삶과 캄캄한 미래에 진저리 치며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몰려갔다"(107).
군사 파시즘과 같이 드러난 '악'보다 왜 '개혁' 세력이 더 문제가 되는가? 내가 찾아낸 그의 대답은 이렇다. "자본화가 무서운 것은 내 스스로가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군사 파시즘은 폭력과 억압으로 우리를 다스리지만, 자본화는 우리한테 욕망을 심어 주어서 우리가 그 욕망을 좇게 만들고 우리의 정신과 가치관과 영혼을 송두리째 변질시킴으로써 지배하는 것이죠. 가치관이 변하는 것입니다"(193).
그렇다면,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적'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조중동'이니 '수고반동'이니 하는 대체된 적과의 싸움이, "모든 게 이명박 때문", "이명박만 없으면"이라는 허깨비 신학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진짜 적과의 대면을 피하는 방면이기도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진짜 적과 대면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자본주의의 극단화한 형태로서 신자유주의에 기인하며, 결국 자본주의 자체에 닿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216-217).
"우리는 '개선된 세상'이라는 몽상을 버리고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해야 한다"(217)고 말하는 그는, 그 첫 단계로 지극히 전통적인 좌파론, 즉 '계급의식'의 문제를 이렇게 논한다. 국익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세상을 계급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 국익이란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의 거짓 표현일 뿐이라는 것. "계급의식이 결핍된 상태에서, 지금 한국처럼 대다수 인민들이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국익'에 열중하는 상태에서 사회 진보는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진보는 무엇보다 인민들의 계급의식이 얼마나 늘어나는가에 달려있다"(381).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이렇게 날 것으로 담아내는 이유는, 나의 의견을 섞으면 나의 어설픈 철학과 안일한 삶의 태도를 들킬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의견'만 있고 '반성'이 없다면, 그래서 읽은 것이 개선된 삶으로 연결된 것이 없다면, 시끄러운 세상에 소음 하나만 더 보태는 꼴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인정하듯 사그라졌던 마르크스가 재조명 되는 움직임 속에서, 줄곧 좌파의 삶을 지향해 온 <B급 좌파>가 우리의 눈길을 끄는 이유가 그것이다. 시대가 자본과 인간의 욕망 앞에 무릎을 꿇을 때조차도, '다른 세상'에 대한 이상을 포기하지 않은 그가 귀한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정말 문제가 많다고 한마디 하려면, 먼저 '고래가 그랬어' 1부 정도는 후원을 하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많다. '옳음'을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은 적다. '옳은 길'을 배웠지만, 지금 스스로가 부끄러운 이유가 그것이다. 자본은 우리의 정신과 가치관과 영혼을 너무도 손쉽게 변질시키는데, 좌파의 이상은 '타락한 인간'을 쉽게 잠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B급 좌파>는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동원되는 숙명"에 처해 있으나, "적어도 그런 숙명에 순응하는 자신을 불편해 할 줄"(227) 안다면,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위로를 해줄 것만 같다. <B급 좌파>에서 드러나는 좌파 논객 김규항의 '따뜻한'(?) 면모 때문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