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다윈의 시대 - 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
EBS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 제작팀 지음 / 세계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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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진화는 신에 의해 유도되었다?
과학이 신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진화론이 발표된 지 150년이 되는 2009년, 다윈 탄생을 기념한 여론 조사가 미국에서 실시되었는데, 미국 국민의 39퍼센트만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17). 영국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8퍼센트만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신과 다윈의 시대>를 준비하며 EBS 다큐프라임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에는 응답자 중 60펴센트 정도가 진화론을 믿는다고 응답했다(18-19).

그런데 이 설문의 질문과 응답자의 대답이 재미있다. 설문 조사를 보면, '진화론' 또한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믿음'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진화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라는 물음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 있지 않은가? 검증을 통해 법칙을 발견해내는 과학 이론이 '믿음의 영역'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 바로 여기에 <신과 다윈의 시대>가 조명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신과 다윈의 시대>에서 지적하듯이,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과학 이론인 진화론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다윈 이후 진화론과 창조론은 신과 다윈의 대결로 귀결될 만큼 끊임없는 논쟁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논쟁이 더욱 치열한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신의 과학'이라 일컬어지는 '지적설계론'의 등장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법정 싸움으로 번질 만큼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신과 다윈의 시대>는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이 2008년 봄부터 시작해 만든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특별히 이 책은 생명을 탄생을 둘러싸고 세계 석학들이 벌이고 있는 치열한 공방전과 그것에 담긴 함의를 집중 조명했다. 무엇보다 생명의 탄생을 둘러싸고 벌이는 석학들의 논쟁의 쟁점이 무엇인지 핵심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문제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다윈의 이론만으로 생명의 탄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선택론을 내세우는 진화론은 생명의 탄생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진화론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생명체는 확률과 우연만으로 만들어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112).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내세우는 지적설계론자들은 생명체는 너무 복잡하여,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한 상태로 진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적인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정보도 진화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하고, 진화론을 믿지 못하는 학자들은 생명의 정보가 절대로 진화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115).

진화론자들은 지금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언젠가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지적설계론자들은 이것을 진화론자들의 '실체를 바라보는 잘려진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진화론자들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틈새에 하나님, 절대자, 아니면 설계자를 집어넣는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장을 '틈새의 신'이라고 비판한다.

<신과 다윈의 시대>는 이러한 석학들의 치열한 공방 뒤에 숨어 있는 문제를 하나 더 끄집어낸다. 진화론이 특별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진화론이 주장하는 것들이 사람들의 세계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힌다. "개신교는 철저한 유신론을 따른다. 태초에 지혜와 능력의 신이 우주의 만물을 창조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의하면 모든 생물이 오랜 시간과 함께 저절로 생겨나는 것인데, 이는 무신론과도 같다. 개신교와 진화론이 불꽃 튀며 부딪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유신론과 무신론은 타협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정 반대되는 신념 체계이기 때문이다"(194).

실제로 유전자에 토대를 두고 생명의 진화를 탐구하는 리처드 도킨슨은 <만들어진 신>과 같은 책을 출간하는 등 진화론의 이름으로 종교를 위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성과 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을 설립하여 무신론 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고 한다. 김상복 목사님의 지적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진화 대 창조의 대결이 아니라, 유신론적 과학자들과 무신론적 과학자들의 논쟁이며, 철학적 대결이고 신념의 대결이라는 생각이 든다(207).

오늘 이런 기사가 떴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7일 출간될 '위대한 설계'(원제: Grand Design)에서 우주가 창조주의 위대한 디자인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생겨났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소개했다." 이 기사에 대한 덧글을 보니, 무신론자를 자청하는 많은 네티즌들이 (다분히 감정적으로) 기독교를 비난하며 신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과 종교의 전쟁은 힘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게 끝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도 결코 아니다. 

지석설계론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인 월리엄 뎀스키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세계는 지적인 존재의 설계에 의해 탄생한 것일까요? 아니면 생존을 위해 자연에 적응한 결과일까요?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사회와 문화의 모습이 달라지고, 또한 그 속에서의 과학과 종교의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125).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사회와 문화의 모습"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영혼(영원)까지 결정지을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이 벌이고 있는 공방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공방이며, 이것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 때,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무신론적 과학자들이 생명의 탄생이 '우연'이었음을 증명해내기 전까지는, '신과 다윈'의 논쟁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과 다윈의 시대>, 무엇을 믿을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제대로' 알려는 노력(탐구)을 한 번쯤은 시도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알려는 노력과 함께 진지한 성찰을 도와주는 <신과 다윈의 시대> 제작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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