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걷기사전 - 서울에서 제주까지 걷고 싶은 길 200
김병훈 외 지음 / 터치아트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걷기 + 여행 = 삶의 여백 같은 여행


어릴 때부터 차 멀리가 심했던 나는 어디든 걸어가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은 중학교 때 조선일보 사옥으로 현장학습을 갔는데, 그곳 세종로사거리에서부터 서울대 부근 신림동 집까지 걸어온 적도 있다. 길을 몰라 버스 노선을 따라 걸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내가 걸었던 최장 기록이 아닌가 싶다. 의기투합했던 친구 둘과 차비까지 탈탈 털어 떡볶기도 사먹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으면서, 걸어걸어 집에 도착해서 보니, 발바닥에 온통 물집이 잡혀 있었다. 다리가 아파 그만 포기할까 하는 유혹도 컸지만, 결국 끝까지 걸었고,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있다. 걸어서 한강을 건너던, 그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요즘 왜 이리 걷기 여행이 열풍일까? 걷기 여행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일까. 걸으면 운동도 되고, 사색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느리게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바라보고,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여유’와 ’여백’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쫓기듯 내몰리는 인생 길에서 잠시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여백 같은 공간이 ’걷기 여행’이 아닐까.

<대한민국 걷기사전>에서 선정한 ’서울에서 제주까지 걷고 싶은 길 200’은 삶의 여백 같은 길이다. 주로 자연과 유적를 중심으로 한 고요한 길이 선정되었다.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멀찍이 물러선 깊숙한 산길, 파도 소리 들으며 거니는 해변길, 지친 몸에 신선한 산소와 피톤치드를 채우며 걷는 숲길, 역사와 문화를 더듬어가는 답사길, 사람 사는 온기가 그래도 전해지는 작은 동네길, 큰맘 먹고 나서는 일주일까지, 그동안 필자들이 걸었던 수많은 길 중에서 정말로 걷기 좋은 길과 멀고 힘들더라도 한 번쯤 걸어 보면 좋은 길들을 엄선하여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8-9).

무엇보다 <대한민국 걷기사전>은 ’걷기’를 작정한 책이다. 대한민국의 걷기 좋은 길, 걷고 싶은 길 선정은 물론, 걷기 여행을 위해 걷기 좋은 옷차림, 도움 되는 준비물, 좋은 걷기 습관 들이기, 장거리 걷기 준비물까지 살뜰하게 챙긴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걷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단, 코스마다 교통편이 서울에서 출발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어릴 때, 나는 틈만 나면 남가좌동에 있는 모래네 시장과 노점상이 즐비한 신촌 일대를 탐험하듯 헤집고 다녔었다. 아직은 세상이 두려웠던 것인지 동네밖으로 많이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산처럼 쌓여 있던 먹거리, 신기한 물건들, 열정적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들, 정답고 유쾌한 흥정이 가득한 그 열기가 좋아서 나도 덩달아 신이 났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곳은 나의 첫 번째 걷기 여행 장소였던 셈이다. <대한민국 걷기사전> 2가 제작된다면, 이렇게 요란한 곳도 포함시켜 보면 어떨까 싶다.

<대한민국 걷기사전>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길’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를 비롯하여 걷기 여행 열풍이 거세지면서 국토가 재정비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걷기 여행 열풍 덕분에 더 아름다워질 국토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