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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바로보기 - 감추어진 이슬람 1500년 역사를 찾아서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이슬람 탄생에서부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인티파다(민중 봉기)까지!
한국이 다문화 시대를 맞아 다인종, 다종교 사화로 접어들면서 가장 활발하게 한국에 들어오는 종교인이 이슬람교도라고 한다. 한국이슬람중앙회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한국 이슬람 신자의 수는 15만 명인데, 이중 한국인 이슬람 신자가 5만 명이다. 인천 지역에 이슬람의 거대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떠돌고, 선교적인 목적을 가진 무슬림들이 한국에 여러 모양으로 정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 기독교 선교사님으로부터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는 무슬림의 숫자에 선교 진영이 긴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이슬람' 하면 '먼' 중동 지역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슬람 바로보기>를 읽으며, 이슬람이 "13억 56개 국을 휩쓸고 지구촌의 4분의 1일 차지"하고 있다는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슬람 바로보기>는 "중동 갈등의 핵, 더 나아가 전 세계 분쟁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책이라 할 수 있다. 9.11 테러 이후 중동 지역의 분쟁은 더욱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상대적인 약자'의 자리에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동정론을 일으키는 책들도 자주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 편이냐, 팔레스타인 편이냐'의 편가르식 사고 이전에 먼저 진정으로 평화로운 공존을 원한다면, 왜 이런 분쟁이 계속되는지 그 근원부터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슬람 바로보기>가 시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슬람 바로보기>는 먼저 역사 인식의 사각 지대에 놓인 이슬람 문명과 이슬람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도모한다. 저자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의 중동'과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서구 열강에 의해 제멋대로 국경선이 그어진 '현대의 중동' 사이에 존재하는 '수 천년의 공백'이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고 지적하며, 그 공백을 메우는 작업을 시도했다. 저자는 서구와 미국을 향한 극도의 지식 편중 현상에서 벗어나, 거의 무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가 갑자기 '자살테러'의 일그러진 모습으로 등장한 이슬람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7세기 이후 아라비아 사막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이슬람 문명은 오늘날 우리들이 접하는 이슬람 테러단체들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해해야 한다"(22).
<이슬람 바로보기>는 많은 이슬람 관련 서적들이 간과하고 있는, 아라비아에 정착한 유대인들과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와의 관련성을 추적하며 시작한다. 유대인들이 아라비아 사막으로 들어와 정착하는 과정과 아라비아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이슬람교 탄생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읽을 수 있다. 무함마드의 전 생애에 얽힌 유대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추적하며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에서 유대인과 유대교가 끼친 역할을 밝히고 있다. <이슬람 바로보기>를 읽으며 새삼 이슬람교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슬람 바로보기>를 읽으며 가장 궁금하고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꾸란'이란 슬로건은 이슬람의 급격한 전파를 설명하기 위해 서구인들이 만든 용어다. 서구인들은 이슬람의 호전성과 종교의 강압적 전파를 강조하기 위해 이런 문구를 만들어냈지만, 이슬람의 질풍노도와 같은 전파 속도와 관련된 신비는 단순히 이 슬로건 하나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오히여 이슬람이 한 번 거쳐 간 지역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슬람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현실은 이슬람 전파를 '꾸란 아니면 칼'로 외쳐댄 서구인들의 주장을 오히려 궁색하게 만든다"(75). 다시 말해, 소수의 아랍인들이 주축이 되어 창시된 이슬람교가 어떻게 그토록 급속도로 거대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몇 가지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기독교 신앙인의 입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이것이다. "토착 문화를 흡입하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이슬람의 관용성이다.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를 국가 종교로 표방한 비잔틴과 페르시아 제국은 종교에 대한 간섭이 지나쳤고 종파 간의 차별과 목숨을 건 이단 논쟁으로 백성을 힘들게 했다"(77). 초기 이슬람 전파의 기적은 군사적인 정복이 아니라, 피정복민의 자발적인 이슬람화였다는 것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78). 다양한 문화를 흡수해서 하나로 만들어내는 용광로와 같은 관용성은, 빠르게 글로벌화 되고 있는 국제 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 바로보기>는 중동 지역 갈등의 핵인 예루살렘 현지에 살면서 '인티파타'(민중 봉기)를 직접 목격하고 있는 '내부자의 목소리'이다. 이슬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생동감이 있다. 이슬람과 중동 지역 분쟁에 대한 시사적인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역사를 지루해거나 시사를 어려워하는 독자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너무 무지했던 탓인지, 나에게는 모든 이야기가 새로웠고, 이제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속사정에 대한 그림이 좀 그려지는 듯하다. 세계시민의식이 요구되는 국제사회에서, 지구촌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라도 꼭 관심을 가지고 알아둘 필요가 있는 이야기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