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철학 - 오스왈드 챔버스의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14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황 스데반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시리즈 중 가장 읽기 어려웠던 책입니다. 내용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죄의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이 '전혀' 달라 당황스러웠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죄의 철학>에 내게 어렵게 느껴졌던 이유는 각론보다 죄의 문제에 대한 통찰, 다시 말해 각론을 담고 있는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죄의 철학>은 '부분'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보통 '죄의 문제'를 구원받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삶이 죄인의 삶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후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고, 구원 이후의 삶은 이제 죄와 상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죄의 철학>에서 오히려 '믿는 자'(정확하게 표현하면 복음을 접한 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교인)의 죄의 문제를 더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총 10개의 목차 중에 1장 '죄의 철학' 이후 2장 '구속에 대한 교육적 통찰'부터 10장 '조화'에 이르기까지 9/10가 믿는 자의 입장에서 고찰되어야 할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일치된 이후의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정말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149).

언제나 그렇듯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는 철저하게 '성경적'입니다. 제목은 <죄의 철학>이지만 이 책 역시 '온전히'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죄의 철학>은 관련 성구를 주석하고, 그 논지를 다시 성경 말씀으로 입증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의 내용이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는 언제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해냅니다. 문제는 그 간과하게 쉬운 지점이 주변부가 아니라, 성경의 핵심 메시지라는 데에 있습니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또 하나,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믿는 자들을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믿는 자가 들어야 할 복음'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착각 속에,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착각 속에, 거듭났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착각에서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가 강력하게 파고들면, '딴 생각'에 젖어 있던 영혼에 전기파 같은 충격이 전해집니다. 그것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치 벼랑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긴장감과 같은 것입니다. 

 
"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혹을 통해 우리를 잘못된 행동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중생을 통해 우리 안에 넣으신 생명이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게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134).

<죄의 철학>은 자연인이 처한 죄의 문제와 구원받은 사람이 처한 죄의 문제를 나눕니다. 성도는 "선하게 보이는 것들조차 영적인 차원에서 시험할 수 있어야"(133) 합니다. "죄의 성향은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시는 것에 대항하는 근본적인 반란"(125)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해도, 선한 것이라 해도, 가치 있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아', 다시 말해 내 뜻, 내 욕구를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살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자기애의 성향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권을 부추기는 모든 유혹에 굴복한다"(127).

 
"맛을 잃은 소금이 물질 세계에서 가장 저주스러운 영향을 주듯이, 거룩을 잃은 성도는 영적인 세계 속에서 전염병 같은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눈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성도의 모습을 잃는다"(115).

<죄의 철학> 뒷 표지에 보면, 이런 물음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죄인에 멈출 것인가? 거룩과 의의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것인가?" 저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일치된 삶"이란 구절에서 발견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 대한 권리를 철저하게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이렇게 외칩니다. "오, 성도의 저주는 세상적인 잘남인 것을 깨닫는가!"(41) 죄의 세력과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장소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의 내면이었습니다. 그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는 바로 은밀한 나의 내면이었던 것입니다.

'거룩을 잃은' 우리의 삶 때문에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오해하고, 교회 공동체가 모욕 당하는 것을 생각하니 괴롭습니다. <죄의 철학>을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나의 모든 자랑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높아지려는 나의 모든 시도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나의 모든 기도들, 그 모든 것들이 낱낱이 파괴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자주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또 내가 얼마나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증명하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신체에는 휴식이 필요하지만 영적인 삶에서는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107).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는 이제껏 우리를 깊은 좌절과 철저한 절망으로 인도하지만, 그 완전한 절망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철저한 절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자유와 기쁨을 선물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철학>에서는 그러한 해방감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책의 끝장을 다 덮을 때까지 제 마음은 팽팽한 긴장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그 참된 거룩과 의의 높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 긴장은 계속 될 것입니다. <죄의 철학>을 통해 깨달은 것은 '죄의 문제'는 어떤 상태나 외부적인 행위가 아니라, 곧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죄의 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해방의 선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라는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철저히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오직 주께 굴복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거룩한 삶으로 들어오는 즉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거듭나서 거룩하게 된 것은 시작일 뿐이다"(187).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나기"(엡 4:15)까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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