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명품 여행지 - 해외여행 뺨치는
홍기운 지음, 권기왕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 승!"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이렇게 외칠 수 있기를 바랬다. 무조건 우리 편이 이기기를 바라는 경쟁심리도 있지만, 옆 동네 놀러가듯 해외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그럴 수 없는 나의 형편 때문에 배도 좀 아프기 때문이다. 휴가철이 지나고 삼삼오오 모여 어딜 다녀왔는지 이야기꽃을 피울 때면 외국의 이름난 곳을 다녀온 여행자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좀 쪼그라든다.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를 속일 수 없는 열등감이란 녀석이 조용히 고개를 쳐드는 것은, 국내 여행도 해외 여행 "못지않다"는 믿음이 내게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이 책이 그러한 나의 생각이 선입견이고 왜곡된 생각이라고 꼬집어준다면 해외 여행을 자주 나가지 못하는 형편이 좀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해외 여행 빰치는 대한민국 명품 여행지>는 해외 여행 vs 국내 여행 대격돌에서 '대한민국 승!'을 외치고 싶었던 나의 발상이 얼마나 유치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이 책은 해외 여행에 대한 무조건적인 로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외 여행 뺨치는" 대한민국 "명품" 여행지의 숨은 멋과 매력을 찾아준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해외와 국내의 "닮은 꼴" 여행지 찾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운 유희이다.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너른 시각을 갖게 해주는 기발하고 유쾌한 여행 테마인 것이다.

 
"여기 실린 78곳의 국내외 여행지가 한 책 속에 묶인 인연은 서로 '닮았다'는 것이다"(머리글 中에서).

<해외 여행 뺨치는 대한민국 명품 여행지>는 "세계에서 인정받은 우리나라 베스트 여행지 39곳"과 "국내와 비슷한 해외 인기 여행지 39곳"을 서로 비교해볼 수 있는 방식으로 꾸며져 있다. 해외 유명 여행지를 먼저 소개하고 그에 견줄만한 국내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여행지를 보며 "이에 견줄만한 국내 여행지는 어디일까?"를 미리 상상해보는 즐거움도 있다. 예를 들면, 원시 자연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거대한 늪지대인, 미국 조지아 주와 플로리다 주의 경계 지역에 있는 오커퍼노키 늪에 견줄만한 국내 여행지는 어디일까? 난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국내 최대의 내륙 습지라고 하는 경상남도 창녕의 '우포늪'(22-27)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는가 하고 말이다. 이곳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매립 공사를 하거나 쓰레기를 매립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물새 서식지이며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인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물새를 비롯한 생태계 생물들의 서식지로 보호받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650여 종이 넘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석하고 있기 때문에, 우포늪을 여행할 때에는 남의 집에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켜 "그저 조용히, 잠시 머물다 오는 것"이라는 여행자의 에티켓까지 일러준다.

<해외 여행 뺨치는 대한민국 명품 여행지>를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국내 여행지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보리밭과 견주고 있는 고창의 "창보리밭"(92-97)이 가장 마음을 끌었다. "고창군 공음면 일대 30만 평의 드넓은 대지에 보리가 자라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다. 매년 4월 중순부터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꼭 때를 맞춰 저 푸른 초록의 평원을 걸어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사진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여행 서적이 지닌 함정을 알고 있다. 책으로 소개되는 여행지의 멋과 직접 경험하게 되는 여행지의 실제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도심에 뿌리내린 작은 중국"이라는 테마로 격돌한 '캐나다 벤쿠버 차이나타운 vs 인천 차이나타운' 같은 경우. 인천 차이나타운에 몇 번 가보았고 그곳에서 중국 요리도 더러 먹어보았지만, 나는 별 감흥을 느껴지 못했었다. 어떤 여행지의 경우는 책에서 보고 감탄하여 큰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찾았는데 책에서 보았던 그 장면 하나가 '다'여서 실망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것이어서, 그 반대의 현상도 일어난다. 평소에는 별 가치와 멋을 느끼지 못하다가 책에 등장하면 그 여행지가 달리 보이는 것이 그런 현상이다. 예를 들면, 호주 시드니 모노레일이 소개될 때, 우리나라에 이에 견줄만한 곳이 있을까 의아했다. 잔뜩 기대했다가 월미도 모노레일이 등장하니 "에이~" 하는 다소 실망스러운 감탄사가 흘러나왔지만, 아니다! 월미도 모노레일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인천의 차이나타운도 캐나다 벤쿠버 차이나타운과 비교되는 것을 보니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여행을 할 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자고로 여행은 어디를 여행하느냐 보다 어떤 마음으로 여행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같은 여행지도 여행자의 마음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게 매겨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해외 여행 뺨치는 대한민국 명품 여행지>는 국내외 여행지의 닮은 꼴을 발견한다는 발상이 신선했고, 국내 여행지의 숨은 멋과 매력을 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여행은 자랑이 아니다. 여행은 과시도 아니다. 여행은 돌아봄이고, 바라봄이다. 부담 없이 해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저절로 쪼그라들었던 나의 작고 약한 마음을 반성하며, "명품 여행지"만큼이나 진정으로 "명품 여행"을 즐길줄 아는 "명품 여행자"가 되자고 거창한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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