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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빛낸 세계 명화 - ABC 화가 순으로 보는 ㅣ 마로니에북스 아트 오딧세이 2
스테파노 추피 지음, 한성경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서양미술사를 빛낸 서양 화가 인물 백과사전!
그림의 관한 몇 권의 책을 읽고 그림에 대해 그래도 꽤 알지 않나 하는 교만함이 살짝 고개를 들 때도 있지만, 아직도 몇몇 유명한 화가의 유명한 작품 이외에는 화가와 그림을 잘 연결짓지 못한다. 오히려 그 몇 권 읽은 책들 때문에 헷갈리 때가 더러 있다. 많이 본 그림인데 화가가 생각나지 않고, 알 것 같은데도 잘 기억나지 않는 화가 이름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마로니에북스가 펴내는 명화에 관한 책들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미술사를 빛낸 세계 명화>를 'ABC 화가 순으로 보는' 컨셉이다. '미술사의 결정적 순간을 수놓았던 거장'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나는 첫 장부터 좌절하고 말았다.
피테르 아르첸
프란체스코 알바니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안토넬로 다 메시나 ......
A를 다 지나도록, A를 지나 B로 접어들었는데도, 아는 이름이 없다. 어디 가서 명화를 좀 안다는 말은 아예 말아야겠다. 그런데 ABC 순이라는 이 책, 결정적으로 ABC 순이라는 감이 전혀(!) 안 온다. 화가들의 이름을 모두 우리말로 번역(?) 해놓고, 영문 표기를 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차는 "ABC"인데 이름은 한글로 표기되어 있어 오히려 화가들 이름이 뒤죽박죽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차라리 영문 표기를 먼저 하고 한글로 표기된 이름을 괄호 처리했으면 어떨까 싶다. 그렇게 해두어야 원하는 '목차를 보고' 원하는 화가의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찾을 수 있고, 화가의 이름을 부르는 발음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목차가 ABC 순인 것도 확실히 느껴질테니 말이다.
또 하나, "화가별로 살펴보는 신개념 서양미술사"라고 하는데, '史'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화가의 이름순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대와 화풍을 넘나드는 '목차의 초월성'이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의 극심한 단절(!)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페델코 바로치(우르비노, 1535-1612) 바로 옆에 자리한 '장미셸 바스키아'(뉴욕, 1960-1988)와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사를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16)을 만났다가 곧바로 이어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과의 예상치 못한 만남 이후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자각하게 되어 1983년 집중적으로 워홀과 협동 작업을 시작했다는 화가"를 만나는 경우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분류법, 즉 역사적, 시대적, 국가적, 같은 화풍, 서로의 영향 등 일반적으로 연관성 있는 카테고리로 화가를 분류하거나, 아니면 한 명의 화가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 무엇도 아닌 "화가 이름순"이라는 목차가 페이지를 넘어가면서도 일정한 줄거리를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넓은 백사장에서 모래알을 하나씩 집어드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영어 사전을 펴놓고 'A'부터 단어를 외워가는 막막함이라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별 다섯을 주는 것은, "화가의 이름순"으로 정리된 서양미술사 책을 한 권쯤 소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책은 보기만 해도 소장 의지가 불타오른다. <미술사를 빛낸 세계 명화>는 "총 301명의 화가들이 남긴 종교화, 초상화, 정물화 속에 엿보이는 그들의 삶과 예술, 그 속에 담긴 주제의식을 통해 그림을 둘러싼 당시 시대상을 조명한다." 이 책을 통해 선이 굵은 화가를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화가의 이름순"이라고 하니, 화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책장을 넘겨가며 눈에 띄는 작품을 만나면, "이것을 그린 화가가 누구지?"라는 자연스러운 물음과 함께 화가의 이름을 머릿속에 한 번 더 되새기게 된다. 예를 들면, <거울>이라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기괴한 화풍"의 화가 이름이 '주세페 아름침볼도'이다. 개인적으로 워낙 강렬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한 번 더 보았다. "그는 화폭에 다양한 사물을 첨가하는 방법을 통해 초상화와 알레고리화를 구성했다. 수세기 동안 그의 양식은 너무 자주 모방됐기 때문에, 때때로 정확한 진위여부 판가름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20세기에 어떤 이들은 그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추대하기도 했다"(12)는 설명과 함께. <물질>이라는 작품의 '움베르토 보초니'(31)도 새로 기억하게 된 화가의 이름이다(그런데 이름들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어줍잖은 허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명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언제나 명화를 감상하는 일이 즐겁다. 세계적인 명화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경외감이 생겨나니 말이다. 상식과 교양으로 읽기 좋은 만큼의 길이를 가진 전문적인 설명이 화가와 그림에 대한 눈을 열어준다. 알면 알수록, 어렴풋하지만 거장의 예술적 영감이 느껴질 때마다, 한 폭의 작은 화면에 담긴 작품 하나 하나가 신비롭기만 하다. 정지된 화면 안으로 잠겨드는 이 마음을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익숙함을 경멸을 불러온다고 하지만, 보고 또 보아도 <미술사를 빛낸 세계 명화>와 만나는 일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