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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가설 - 고대의 지혜에 긍정심리학이 답하다
조너선 하이트 지음, 권오열 옮김, 문용린 감수 / 물푸레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행복에 관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려운 책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이 책의 감수를 맡은 문용린 교수님께서 "한번 읽고 나면, 지적인 뿌듯함도 남기는 책"이라고 하신 뜻을 알 듯하다. "이 책은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행복에 관한 동서양의 지혜를 모으고, 이를 뇌생리학과 인지발달심리학 등 현대과학의 성과와 연결시켜서 행복의 본질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시도한다"(6). 한마디로, (내게는) 어렵다!
(나는 처음 알게 된 비유이지만) 이 책의 저자가 코끼리와 기수의 비유 창안자라고 한다. 코끼리와 기수의 비유를 잠깐 설명하면, 행복을 찾아나선 인간의 마음은 코끼리 등에 올라탄 기수와 같다는 것이다. 기수는 해석자 모듈이며 의식적이고 통제된 생각이다. 이와 반대로 코끼리는 그 외의 모든 것, 즉 직감, 본능적 반응, 감정, 그리고 자동처리체계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육감이 포함된다(46). 문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기수가 코끼리를 모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가 기수를 모는 것이다. 고삐를 코끼리가 쥐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으로 명상, 인지요법, 프로작 등을 추천한다. 그러니까 직감, 본능적, 반응, 감정, 육감 등 의지력만으로는 조절이 불가능한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코끼리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끼를 길들여야 하는 이유는 "코끼리와 기수 사이의 긴장과 갈등, 조화와 협력 여부가 인간의 행복 추구에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물어보자.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몇 가지 '행복의 가설'이 있다.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서 온다는 것이 그 하나인데, 이런 행복은 지속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고 연구결과도 이를 확인해준다"(17). 한 가지 재밌는 것은 그동안 많은 종교나 사상이 행복을 '안'에서 찾았다면, <행복의 가설>의 저자는 행복을 '밖'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낳은 사상은 물론, 철학과 문학 분야의 다양한 저작들까지 두로 섭렵한 저자가 행복의 가설을 세우고 행복을 찾아 떠난 여행, 그 여행의 종착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세운 행복의 가설은 이렇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수정된 행복의 가설은, 행복은 사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의 조건들을 올바로 정렬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 조건들 중 일부는 내 안에 있다. 바로 내 성격의 각 부분과 차원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다른 조건들은 내 밖에 있다"(402).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외부적인 삶의 조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은 "나 자신과 타인, 나 자신과 나의 일, 나 자신과 나보다 더 큰 어떤 것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설정할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5, 402). <행복의 가설>은 인류가 세워온 '행복의 가설'을 검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예리하고 깊은 통찰의 과정에 비해 도달하고 있는 결론에서 '조금' 맥이 빠지기도 한다. 행복은 오래도록 누릴 수 있는 '감'이 중요한데, 진정한 행복감은 나 자신과 타인, 나 자신과 나의 일, 나 자신과 나보다 더 큰 어떤 것 사이에 올바른 관계 정립이 갖는 '의미'에서 찾아진다고 들린다. 이 책은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행복의 가설'을 검증하는 그 탐구의 과정, 다시 말해, 저자가 새로운 '행복의 가설'을 세우기에 이르는 그 '과정' 자체에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가벼운 농담에서 재미를 찾고, 말초적인 자극이 가져다주는 쾌락을 탐하지만,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기쁨은 이런 것이 아닐 것이다. 어린 자녀가 조막만한 손으로 정성껏 부모님을 위해 만든 작은 종이 상자 하나에서, 우리는 몇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보석 상자에서는 느낄 수 없는 행복을 느끼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한 행복감이 아닐까 한다. 명품으로 휘감은 이기적인 삶보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이타적인 삶이 더 행복하다는 이 책의 (과학적) '검증'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알긴 아는데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