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백과사전 - 광수의 뿔난 생각
박광수 글.그림 / 홍익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급'이 다른 사전, '급'이 다른 생각!

 
조선일보라는 신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 때, 오로지 '광수생각'을 보려고 그 신문을 구하던 때가 있었다. 그 생각이 주는 '여운'과 '느낌'이 좋았다. 그 '광수생각'의 박광수가 '사전'을 하나 편찬했다. 고급스러운 겉모양이 아깝지 않을 만큼 기발하고 멋진 이 사전의 이름은, '광수의 뿔난 생각'이라는 부제를 단 <악마의 백과사전>이다. <악마의 백과사전>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그의 삐딱(!)한 시선을 염두에 둔 것인가? 그의 사전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투영한다.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작가는 자신만의 사전을 새롭게 편찬하며, 세상을 다르게 정의내리고 있다. 'ㄱ'에서 시작하여 'ㅎ'까지 이어지는 그의 사전에는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가 철학은 물론, 세상을 비틀어보는 유머가 빛을 발한다. 몇 가지만 인용해보면 이렇다.

가치,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더 빛을 발하는 것. 교통 흐름이 원할하지 않는 사거리의 교통경찰 아저씨처럼,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라면 속의 떡처럼, 무인도에서의 불티나 라이터처럼"(24).

, "내가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밀고 가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꿈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 전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자기 것인 양 믿고 산다"(48).

달력, "1년이 단지 365일로만 한정되어 있다고 믿는 비관주의자들이 벽에 걸고 보는 종이시계. 반면에 낙관주의자들은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희망을 본다. 학생들이나 직장인들로 하여금 '빨간 날'만 목 빠지게 찾게 한다는 점에서 색명을 촉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함"(71).

샐러리맨,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영혼을 내던진 육탄용사들. 자신은 회사를 위해 100점 만점에 200점짜리 일을 하는 데도 50점짜리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늘 투덜대지만, 반면에 경영자들은 100점 만점에 50점밖에 일을 못함에도 200점의 급여를 지출한다며 항상 투덜댄다"(155).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발상으로 세상을 비틀어 보기도 하고, 혼자 책을 읽다가 키득키득거릴 만큼 재밌는 <악마의 백과사전>을 읽으며 내 마음에 가장 깊이 와닿은 한 가지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배려'라고 대답하고 싶다. 삶과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말이다.

배려 [配廬 , consideration]
누구나 충분히 갖고 있다고 스스로 믿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가장 인색해지는 것.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진정한 배려란 용기와 동의어라고 말한다.

<악마의 백과사전>은 '배려'를 정의하며, 저자의 초등학교 시절 추억 하나를 들려준다. 오줌을 싼 제자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도록 제자를 혼내는 척하며 교실 한쪽에 있던 양동이를 들고 와서 물을 확 끼얹어버린 그의 선생님(140-142)! 나는 '광수의 뿔난 생각'을 담은 <악마의 백과사전>이 바로 그 선생님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고백하기를 "나는 마음이 무척 약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이 사람이 용기(!)를 내어 자기의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바로 '배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악마의 백과사전>은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예의를 갖추는 그의 배려가 느껴진다.

'광수생각'의 중심에는 삶에 대한 진지함과 옳은 것에 대한 끈질긴 투쟁이 보인다. 쓰라리고 아파도 그 아픔을 견디며 모래 한 알을 제 품에 품어 진주를 만들어내는 조개처럼, 광수 그의 생각은 제 살 속으로 파고드는 생존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어냄으로써 빚어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말만 번지르르한 지식인의 일침에는 거부감이 들고, 달변가의 궤변에는 쓴웃음이 나지만, '광수의 뿔난 생각'은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또 하나,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 '광수생각'이 원래 이렇게 유머러스했던가? 도처에 난무하는 가벼운 농담을 향해 이렇게 외쳐보고 싶다. 농담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농담이 좋다!

덧붙여, 내가 살아온 경험과 배움을 토대로 나도 사전 만들기에 도전한다면 나는 어떤 단어를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본다. '광수'처럼 나도 세상을 해석하는 나만의 사전을 가질 나이가 된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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