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쇼퍼홀릭 2 :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 - 합본 개정판 ㅣ 쇼퍼홀릭 시리즈 2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
칙릿소설의 발랄함과 해학적 풍자가 돋보이는, 쇼퍼홀릭의 성장 보고서!
<개미와 베짱이>이라는 이솝 우화를 현대 버전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이야기가 있다. 여름 내내 일만 했던 개미는 몸에 골병이 들어 겨울 내내 앓으면서 지냈고, 노래하기를 즐겨했던 베짱이는 음반을 발표하여 대박이 났다는 것이다. (다른 버전에서는 베짱이의 두 번째 앨범이 망해서 베짱이는 다시 쪽박을 차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도 한다.) 이러한 해석에는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당연하게 여기지는 것을 비틀어 생각하는 해학적 묘미가 들어 있다. <쇼퍼홀릭2 :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는 <개미와 베짱이>의 현대 버전 같은 재미를 선사해준다. 주인공 레베카에게 구제불능의 '쇼핑 중독'은 더 이상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디딤돌되어 인생의 반전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이 책은 <쇼퍼홀릭> 시리즈 중 두 번째 책인데, 아직 다른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시리즈와의 내용적 연관성은 잘 모르겠다. 다만, 1권을 읽지 않고 2권을 읽었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며, 시즌제로 제작되는 드라마처럼 완성도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전할 수 있다.
칙릿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중에 <쇼퍼홀릭2>에 등장하는 주인공 레베카 만큼 대책 없는 아가씨가 또 있을까 싶다. 쇼핑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와는 멀어도 한 참 멀리 떨어진 세계에 사는 아가씨이다. <쇼퍼홀릭2>의 저자는 명품에 열광하고, 쇼핑을 사랑하는 여성의 심리를 발랄하고 유머러스하게 잘 묘사해주고 있다. 못말리는 쇼핑 중독에, 대책 없이는 사고뭉치에, 쾌활이 지나친 즉흥적인 낙천성에, 당황스러울 정도로 천진무구하기까지 한 레베카! "필요한 것만 사라"는 새로운 좌우명에도 불구하고, 근사한 브랜드와 상점을 볼 때마다, "아, 난 몰라!"를 외쳐대며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그녀! 솔직히 나는 그녀가 좀 짜증스러웠다. 그 '처참한 하루'가 시작되기 직전, 내용의 2/3를 다 읽어갈 때까지 말이다.
레베카 불름우드는 <모닝 커피>라는 아침 방송에 고정 출연하며, "돈을 돌보세요! 그러면 돈이 여러분을 돌봐줄 거예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재테크 상담가이다. 뉴욕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야심찬 연인 루크를 따라 뉴욕에 갈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인생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물론 각종 청구서와 독촉장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주거래 은행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약간(!)의 위험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뉴욕의 방송관계자들이 관심을 내보이고 있으니 이제 곧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모두 갚아버리면 된다! 아무렴! 그러니까 구겐하임 미술관이 아니라 구겐하임 미술관 상점에서 꽤 예쁘고 훌륭한 문화를 접하고, 멋진 상점들이 즐비한 소호에서 쇼핑의 자유를 만끽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의 일종으로 산 베라 왕 드레스를 입고 루크와 함께 멋진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뉴욕이야말로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다!
그러나 레베카는 그녀의 쇼핑이 "이렇게 끔찍한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과 만족감으로 충만했던 '그 밤'이 지나고, 수치심이라는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채소가 되어버린 '그 날'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재테크 상담가의 무분별한 쇼핑과 약간(!)의 빚이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기회를 차버리고,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그녀는 물론, 루크의 것까지!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멀미기가 느껴진다. 처음 살 때는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저 모든 것들이, 나를 그렇게 신나게 했던 저 모든 것들이...... 이제는 그냥 산더미 같은 쓰레기 주머니들로 보인다. 대체 어디에 뭐가 들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건 다만...... 잡동사니일 뿐이다. 태산같이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395-396).
이 책의 2/3에 도달할 때까지, 재미는 있지만 한심하게 생각되는 레베카에게 애정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이 책이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망쳐버린 그날, 레베카와 루크의 대화를 통해 '쇼핑 중독'의 문제를 '일 중독'의 문제와 대비하여 풀어가는 작가의 의도를 눈치채고 나서는 갑자기 이 책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좀 철이 없는 정도가 아닌 레베카의 무책임한 쇼핑만큼이나, 피 똥싸게 일하며 성공에만 매달리고 있는 루크의 냉정한 생활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일까.
더 이상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밑바닦까지 곤두박칠 치게 된 레베카가 막바지에 멋진 반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그녀의 진심어린 마음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힘들어도 웃게 해주는 따뜻한 가족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다. 레베카는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빛나는 우정에 힘입어 모든 상황을 역전시킨다. 그녀는 진짜로 모두에게 "본때를 보여준다." 이에 반해 평소에도 매력이 넘치며 매사에 냉정하고 철두철미해 보이는 루크였지만, 그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을 때 그의 옆에는 아무도 있어주지 않았다. 동료는 그를 배신하고, 친어머니는 그에게 관심조차 없다. 이 책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주었다. "쇼핑밖에 모르는 삶과 성공밖에 모르는 삶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어리석은 것은 레베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함부로 유혹에 빠지지 말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라고. 그 말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 일, 내 인생, 내가 진정 무엇을 해서 먹고살기 원하는지에 대해서"(540).
다른 사람의 조언에 귀기울일줄 알았던 레베카는 자신의 무책임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나서야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레베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 레바카의 어머니는 레베카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런데 얘, 세상에 넌 대체 어떻게 돼먹은 애가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니?"(540). 이보다 더 유쾌하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격려가 또 있을까 싶다.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립해서 살고 있는 레베카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루하루가 완전히 전쟁터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바쁘다.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힘에 부치면 부칠수록, 일이 닥치면 닥칠수록, 더 바쁘면 바쁠수록 여기서 일하는 게 더 좋다"(536).
어릴 적 즐겨 읽었던 하이틴 로맨스라는 소설은 항상 마지막 열 장 정도를 읽을 때가 가장 신이 났었다. 모든 갈등이 시원하게 풀어지고, 오해와 갈등으로 멀어졌던 주인공들이 극적으로 다시 만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을 속삭이며 끝을 맺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결말이 바로 그런 즐거움을 선사한다. 결말이 근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