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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동양적 상상력의 근원을 찾아서!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나 안데르센 동화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의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이야기 동양 신화>의 야심찬 선언이다. 어릴 적,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한 유행가의 가사 때문이었다. "끝없이 돌을 밀어올리는 시지푸스 외로운 삶처럼 살아온 것 같아"라고 노래하는데, 나는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그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교양으로라도 꼭 그리스 로마 신화를 섭렵해야겠다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동양에도 이에 대적할 만한 신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동양 신화>를 만나기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이다. 중국의, 또는 동양의 옛 이야기라고 하면 고사성어에 담긴 유래 정도를 들어서 알고 있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전설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야기 동양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더불어 세계 신화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중국 신화, 곧 동양 신화"의 원형을 복원하여, 해석까지 곁들인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 동양 신화>의 저자 정재서 교수님은 '상상력의 제국주의'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신화, 곧 동양 신화를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동양 신화를 읽는 일은 동양인의 존재와 사유의 뿌리를 탐구하는 작업이며, 동양 신화를 읽는 일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자 의식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동양의 신화를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범람하는 외래 상상력의 홍수 속에서 동양인, 아니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의 상상력은 과연 자유로운가?" 대단한 설득력이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하며'만 읽고도 벌써 이 책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도 누가 들려주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재미가 확연히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 동양 신화>는 같은 내용을 다룬 견줄만한 다른 책이 없는 것도 물론이지만, 굉장히 재밌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정재서 교수님은 타고나 이야기꾼이다!!! 신기한 동양 신화의 매력 속으로 제대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야기 동양 신화>는 중국 고대 문헌의 원전 자료를 그대로 번역한 역서가 아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의 조각을 모아놓은 책도 아니다. 성서의 '창세기'를 연상케 하는 태초 이야기에서부터 총11장에 이르기까지 '신화학'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만큼 탁월한 '평'이 돋보이는 책이다. 중국 신화의 원형은 물론,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것을 다시 서양이 것과 비교하여 서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서양의 것과의 이러한 비교는 동양 신화에 담긴 매력이 무엇인지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동양 신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라는 연구 주제를 두고, 그것을 '읽어내는' 하나의 '관'(觀)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화보가 풍부한 것도 큰 장점이다.
'동양의 것' 하면 곧 '중국의 것'으로 통하는 것이 괜히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이야기 동양 신화>는 중국 신화 속에는 중국 사람의 신화는 물론 동양 여러 민족의 신화도 함께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한국 신화와도 밀접한 상관 관계에 있다. "죽을 수는 있어도 굴복은 없다" 편에서 만난 '불굴의 영웅 치우와 황제의 전쟁 신화' 처럼, 붉은 악마의 투혼 속에 깃들어 있는 치우는 우리 민족에게도 친숙한 신이다.
"신화는 문화의 원형이다. 그래서 동양 신화를 읽으면 우리는 동양 문화의 원형을 알게 된다. 문화의 원형을 알게 되면 오늘의 문화 현상을 더 쉽게 잘 이해할 수 있다"(13).
동양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을 재밌게 읽었어도 그리스 로마 신화만큼 아직 친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었다는 이 뿌듯함은, 동양의 신화를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역설하는 정재서 교수님께 제대로 설득당한 만족감일 것이다! 재밌다는 최고의 강점뿐만 아니라, 서양의 것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는 동양의 신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만으로도, 그것을 읽음으로 상상력의 확장과 사고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레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