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나 근대 직전만 해도 인간의 기대수명은 35세에 불과했다. 사람이 죽는 건 아주 흔했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죽음을 당연히 받아들였다"(171).

 
우리는 '죽음'이라는 끔찍한 운명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것 같다. 당연하게 내일을 설계하고, 자주 오늘의 삶을 지루해하니 말이다. 기욤 뮈소는 우리가 입에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불쑥 꺼내들었다. <그후에>를 통해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셨습니까?" 몇몇 작품을 통해 만나본 기욤 뮈소는 늘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사랑을 이야기했었다. 그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는 사랑을 믿지 않는 나의 얼음장 같은 마음을 녹이기에도 충분했었는데, 그는 왜 이처럼 어둡고 무서운 화두를 던지는 것일까. <그후에>를 다 읽고 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은,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고,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죽을 준비가 되셨니까?"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졌던 화두였던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닐 것 같다. 잔인하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별이 더할 수 없이 안타깝고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욤 뮈소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방식으로, <그후에>도 날짜와 장소로 장면이 구별된다. 12월 9일 맨해튼의 아침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12월 25일 눈부시게 찬란한 크리스마스 날 끝이 난다. 행복해서 더 슬픈, 사랑해서 더 아픈, 그 정점에서 막을 내린다.

네이선 델 아미코는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며 승승장구하는 변호사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렛 굿리치라는 낯선 의사가 그를 찾아오면서 모든 것이 혼란에 빠져들고 만다.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메신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굿리치. 굿리치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가 예견한 대로 두 사람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자 네이선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죽음을 예견하는 메신저가 왜 자신을 찾아온 것일까?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 네이선은 이혼했지만 여전히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는 아내 말로이와 딸 보니를 찾아간다. 굿리치의 말대로 죽기 전에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과 화해하고'(399) 떠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죽음을 준비하던 네이선은 굿리치의 정체를 알고 경악한다. 그와 함께 잊고 있었던 어릴적 기억과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되는 네이선!

"이야기 흐름을 단숨에 뒤집는 압도적 반전!"이라는 문구 때문에 마지막 장을 먼저 읽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그렇게 하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네이선이 느끼는 충격과 고통과 반응을 그대로 따라가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후에>는 '죽음'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네이선을 통해 죽음 앞에 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사실적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직업적인 성공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지만 추운 밤에 그걸 베개 삼아 잠들 수는 없는 일"(마릴린 먼로, 23)이라고. "사는 법을 배우다 보니 어느새 때가 너무 늦어버렸다"(아라공, 214)고 탄식하기 전에, 어서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과 화해하라고 말이다. 

기욤 뮈소는 "매일 매일 죽음을 향해 가다 마지막 날 거기에 이르는"(몽테뉴, 195) 우리의 잔혹한 운명을 차분하게 알린다. "사람들은 가슴 아픈 사실을 좀체 믿으려 하지 않지만"(오비디우스, 45) 우리 모두 반드시 그곳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부디, 밤낮으로 이것을 명심하라"(키케로, 170)고 말이다. 죽음의 여행을 앞둔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하나 바로 사랑이다. 서로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랑!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 바닷물도 그 사랑의 불길 끄지 못하고, 강물도 그 불길 잡지 못합니다"(28).

<그후에>를 읽으니, 기욤 뮈소의 사랑 이야기가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를 알 것 같다. '죽음' 앞에 보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응 중에, 기욤 뮈소는 그중 가장 아름다운 것을 택했다. 그러나 내가 읽은 그의 사랑 이야기 중에 <그후에>가 가장 잔인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더 미치도록 잔인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