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코드 - 너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소통의 공간
신화연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부끄러움에 관한 사회학적 성찰

 


"나는 부끄러움의 그 내밀한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 도무지 현대인의 필수교양일 수 없을 것 같은 부끄러움이, 실은 선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리고픈 마음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다"(19).

대학원 행정학과에 '정부와 신뢰'라는 과목이 있었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trust)를 연구하는 과목이었다. 전공도 아니었지만, 일단 그 강도조차 측정해내기 어려운 '신뢰'(trust)를 학문의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부끄러움 코드>라는 책을 접하며, 이것이 가장 먼저 생각난 이유는 과련 '부끄러움'을 학문적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것도 도덕적, 심리적 성찰이 아닌 사회학적 담론이 형성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반,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 반으로 이 책을 읽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은 물론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에 대한 비판, 적극적인 사고 방식, 개성 시대의 자기 주장, 당당함과 자신감을 강조하는 자기계발 등이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에서 다루는 '수치심'은 일반적으로 극복해야 할 감정이고, 윤리적으로도 '부끄러움'은 죄(잘못)에 근거한 현상이기 때문에 권장할 만한 감정이 아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지점, 즉 부끄러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깨는 작업을 시도한다.

"부끄러움은 패자(敗者)의 감정이며, 희생자에게 강요된 사회적 족쇄 같은 감정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 부끄러움은 내 인식의 넓이 안에 다른 사람의 시각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의 한계를 깊게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강자(强者)의 감정이라는 주장으로 이 책을 시작해 본다"(19-20). 

심리학을 전공하기도 한 저자는, 부끄러움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사회적응적인 부끄러움이고, 다른 하나는 비적응적이고 자기파괴적인 부끄러움이다. 물론, <부끄러움 코드>가 복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응적인 부끄러움'이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의 미덕이며, 소중한 능력임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정신병리학적인 위험한 증후로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응력을 높이는 부끄러움의 '기능'에 관심을 두고 있다.

<부끄러움 코드>는 다양한 각도에서 "부끄러움이 작동하는 방향과 그 기능"(22)을 재조명하며 사회학적 함의를 만들어낸다. '부끄러움'은 '너'에게 보내는 '나'의 소망의 메시지(38)라는 측면에서 저자는 부끄러움이 가진 사회적 '소통'의 기능에 주목하고, 인간의 심리적 거리뿐만이 아니라 신체적 거리에도 개입(82)한다는 측면에서 부끄러움이 가진 '생존적 기능'에 주목하기도 한다. 한편, 개인으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사회적 익명성의 그늘에서 '부끄러움'을 모른 채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하는 사례를 들어 '부끄러움'이 가진 사회적 통제기능이 미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135). 또한 한국사회와 같은 권위주의 문화에서는 허풍과 허세가 부끄러움을 관리하는 임시방편이 되면서(167), 그러한 방어기제가 사회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고찰한다. '가면 쓴, 또는 포장된 부끄러움'을 지닌 '명품족들'이 그 한 예이다(169-170).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건강하고, 도덕적인 인간의 감정이라는 점에서 '부끄러움'은 하나의 미덕이요, 소통의 장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개인의 차원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실제는 도망치고 싶은 '절대적 부정(나쁜)'의 감정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부끄러움'은 잘못된 행동을 조건으로 하니 말이다. 그에 반해 사회적 부끄러움은 당위적인 행동, 즉 사회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기능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한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또한 공동체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부끄러움' 같은 것 말이다.

학문적 입장에서 보자면 <부끄러움 코드>는 심리학과 사회학적 통섭으로 이루어진 탐적인 연구라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저자의 말대로 부끄러움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부끄러움'이 가진 사회적 기능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학문적 고찰이지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교양도서로도 재미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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