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다 - 완역결정판
장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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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인 개념이 없어짐으로써 완전히 자유스러워진 세계, 이것이 장자가 생각하는 이상향이다"(99).

 
"장자는 노자와 마찬가지로 도(道)를 천지 만물의 근본 원리로 삼고, 어떤 대상에 욕심을 내거나 어떤 일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無爲), 자기에게 주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여야 한다(自然)고 주장하여, 노장사상이라고도 하는 도가(道家)를 이룩하게 되었다"(표지 날개글 中에서)

<장자>는 몇 번을 읽어도 어렵다. 내겐 너무 어려운 <장자>. "<한서> 예문지와 <여씨춘추> 필기편 고유의 주에서는 '<장자> 52편'이라 하였으나, 지금 우리에게는 33편의 <장자>가 전해지고 있다"(16-17)고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장자의 가르침은 읽어서 알 수 있는 사상이 아닌 듯 하다. 경전을 읽듯이 주야로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어야 할 득도(得道)의 경지를 요구한다. 장자의 것 중 가장 유명한 '장자의 '나비 꿈' 우화, 그 한 대목을 들어보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분별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만물의 조화'라 부른다"(98-99). 장자에게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 귀함과 천함,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상대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상대적인 개념을 초월한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도 없게 될 것이다. 상대적인 개념이 없어짐으로써 완전히 자유스러워진 세계, 이것이 장자가 생각하는 이상향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한결같게' 여겨질 때, 자연에 완전히 융화될 수 있을 것이다"(99). 장자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모든 것을 초탈할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깨달음이 없다면, <장자>를 읽었으나 읽은 것이 아니요, 듣기는 들었으나 들은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장자>의 사상을 논할 실력은 되지 못하고, 기껏 그의 사상을 설명하는 주요 개념을 요약할 수 있는 정도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장자, 그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바로 '자유'였다고 본다.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다"라는 표지의 한줄 글처럼 말이다. 완전한 자유! 장자가 말하는 "완전한 자유의 경지란 사람들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행위와 사상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장자는 사람이 타고난 그대로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부담조차도 거부하면서 순수한 자연에 모든 것을 맡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아보자는 것이었다"(11). 어떻게 이런 경지의 실현이 가능할까? 빠른 걸음으로 바쁘게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도(道)를 아십니까?"라고 물어오는 것만큼이나, 낯설고 이질적이다.

<장자>의 사상을 더욱 미궁으로 몰아가는 것은 "어짊(仁)이나 의로움(義) 같은 것도 사실은 사람의 본성을 그르치는 면에서 도적질 같은 악덕과 다를 바 없다"(11-12)고 하는 주장이다. 어짊과 의로움은 타고난 사람의 본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쓸데없는 것이라는데, 어째서 그런가? 알 듯, 모를 듯하다. <장자>의 우화는 내게 수수께끼이다.

"지극히 올바른 경지에 이른 사람은 그의 본성과 운명의 진실함을 잃지 않는다.  (...)
그러므로 물오리의 다리는 비록 짧지만 길게 이어 주면 걱정이 될 것이며,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짧게 잘라 주면 슬퍼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본성이 길면 잘라 주지 않아도 되고, 본성이 짧으면 이어 주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어짊과 의로움은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진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걱정을 지니고 있는가?
(...)
지금 세상의 어진 사람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서 세상의 환난을 걱정한다. 어질지 않은 사람들은 타고난 성질과 운명의 진실한 모습을 버리고 부귀를 탐내고 있다. 그러니 어짊과 의로움은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227)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홀연히 떠나신 어떤 분을 기억나게 하는 <장자>. 절대적인 것도 상대적인 것도 부정하며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꿈꾸었던 <장자>. 그의 가르침은 논해서 알 일이 아니라, 깨달아 알 일이라는 한 가지만 내게 남았다. 실현은 어렵겠지만, 머리에 담아야 할 가르침이 아니라, 삶에 담아야 할 가르침이라는 한 가지만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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