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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산책 - 소크라테스에서 소쉬르까지
창홍 지음, 정유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진정한 미란 무엇인가?
얼마 전, 팝아티스트 또는 행위예술가로 알려진 낸시 랭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 퍼레이드에서 '거지 여왕' 퍼포먼스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 출국 당할 뻔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의 평가가 양극으로 갈리고 있다. 예술적 행위로 보아야 한다는 쪽과 국제적인 나라 망신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그것이다. 어디까지를 예술의 경계로 보아야 할까. 후대에까지 그 미모의 빼어남이 어떠했는지 전해질 정도로 절세미인이라는 양귀비도 현대의 미의 기준에서 보면 선뜻 미인이라 긍정하기 어렵다. '미'라는 개념만큼 정의내리기 어렵고, 기준이 모호한 것도 없을 듯하다.
인류는 어떻게 미(美)라는 개념을 갖게 되었을까? 미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절대 미(美)라는 것이 존재할까? 미학은 이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해주고 있을까? <미학 산책>은 미학의 태동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의 세계를 탐구해온 미학의 역사를 시기별로 고찰해보는 책이다. 철학을 전공한 저자 '창홍'은 서양 고전 이성주의 미학의 시조를 소크라테스에게 두고 있다. 서양의 모든 미학 사상이 이 시기를 기원으로 삼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고대 그리스 미학의 위대한 시작이라고 선언한다. 소크라테스의 '미덕'의 정의에서 시작하여, 미학 학과를 정식으로 창립한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을 거쳐, 20세기 초 프랑스 언어학자 소쉬르의 기호이론을 시작으로 형성된 구조주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미학 산책>은 철학의 시작이 곧 미학의 시작이며, 미학은 곧 철학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소크라테스의 미의 정의를 들어보면, 왜 미학이 철학과 한 가지로 읽히는지 이해가 간다. "소크라테스는 미란 이처럼 상대적인 개념이며 절대불변의 미는 없다고 보았다. 미란 목적에 적합하게 쓰이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그 목적을 제대로 수행했을 때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된다.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악하고 추한 것이 된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목적론적 관점에서 내린 미의 정의이다"(21). 소크라테스의 정의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서양의 전통적 미학이 탐구하는 미의 세계는 초월적 가치로서의 무엇이다. 그래서인지 "미학과 관련된 학과의 체계가 매우 방대하고 구조가 복잡하며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난해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5)는 저자의 말처럼, <미학 산책>은 쉬우면서도 쉽지 않고, 체계적이면서도 복잡하게 느껴진다.
'미학'을 하나의 학과로 정식 창립한 바움가르텐에 의해 "미학은 이성적 인식의 논리학을 보완하는 감성적 인식의 논리학이라는 이유로 철학의 한 분과로서 자리매김했다"(199). 내겐 너무 어려웠지만, 미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움가르텐의 이론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이론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학의 학명인 영어의 Aesthetics 또는 Esthetics를 직역하면 '감성학'이다(202). 바움가르텐이 사용하는 '감성'이라는 단어는 경험적 감각 혹은 지각이 아니라 경험적 감각을 초월한 것이다. 바움가르텐은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 중에서 미의 근원을 찾았다. 미학은 아름다움을 사유하는 학문이며, 미의 예술에 관한 이론이다(204). 미학의 목적은 감성적 인식을 통해 완전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감성 인식의 완전성에 도달하기 위한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그것은 사유의 조화, 질서의 조화, 기호의 조화이다. 감성적 인식이 완전하려면 풍요성, 위대성, 진실성, 선명성, 확실성, 생명성의 여섯 가지 특성을 가져야 한다. 이후 근대 미학은 이념으로 추구되는 미가 아니라, 감성적 인식에 포착되는 현상으로서의 미를 대상으로 삼았다.
학문으로서의 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할 듯 싶다. <미학 산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미학'의 태동은 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나, 심리학적 미, 사회학적 미와 같이 점차 통합의 학문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학과의 첫 대면이 내겐 너무 어려웠지만, 단순하게 미(美)를 선(善)과 동일시 하며, 신(神)적인 것에서 미의 근원을 찾는 탐구에 마음이 끌린다. '아름답다'라는 숭고한 느낌을 관념적으로나 현상학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이렇게 복잡할 줄이야. 우리의 마음은 이미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는데 말이다. 미학이 발전할수록 미의 세계는 단순해지지 않고 오히려 신비의 영역으로 승화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