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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다!
'역사적 예수'를 주제로 한 문학작품 중에 엔도 슈사꾸의 <예수의 생애> 이후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소설이다. <예수>는 신학적 비평을 토대로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복원해내었다. 복음서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신학적 의미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또한 여기에 작가적인 상상력이 더하여져서 행간에 숨은 당시의 정황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재구성했다. 소설 <예수>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가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세례 요한'의 탄생 예고를 듣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베드로에게 부활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연대기적으로 서술되었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예수와의 만남을 주선해 보기로 했다"는 저자는 "예수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작가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가르침과 비유, 그리고 기적에 대해서도 빠트리지 않고 소설 속에 녹여보려고 하였다"고 밝힌다. 그러니까 이 책은 문학적 창작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원형'에 쉽고 정확하게 다가가기 위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예수'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지리적, 성경적, 신학적 배경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예수의 생애를 복원하였다는 것이다. 로마와 유대인 사이의 정치적 긴장이라든지,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헤롯'의 정체라든지, 마리아가 헤브론까지 세례 요한을 임신 중이었던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여정이 지리적으로 얼마나 험난한 것이었는지, 동정녀 마리아의 임신이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 어떤 위험을 지닌 것이었는지 등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적 지식이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성경 공부를 위한 교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저자는 니고데모가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호칭 속에 '존경'의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예수가 유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가말리엘이나 힐렐 혹은 샴마이 문도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산헤드린 의원들로부터 선생이라는 호칭을 받으려면 적어도 이런 문도 출신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예수를 기꺼이 선생이라고 높여 부르며 존경심을 드러낸다"(84-85).
오랫 동안 복음서를 가르쳐온 나도 새롭게 배우게 된 것이 많다. 한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 첫 기적을 베푸실 때,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명령하신다. 저자는 이때 예수님의 마음이 숨겨진 갈등이 있었음을 이렇게 파헤친다. "유대인 정결예식에 따라 물 두세 통 담을 수 있는 석조(돌항아리)가 여섯 개 놓여 있다. 그러나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고뇌한다. 하필 눈에 띈 게 정결례를 하는 미크베(석조)인가. 매일 공동식사를 하기 전에 그들이 그곳에 몸을 담그고 씻었을 것이다. 성찬예식에 참석하기 전에도 그들은 그곳에서 몸을 씻엇을 것이다. 그런 미크베에 포도주를 담는다는 것은 부정한 일이다. 그것은 한 곳에 두 가지 음식을 섞지 말라는 토라의 교훈에 어긋나기 때문이다"(73). 이것은 유대인의 율법과 문화를 알지 못하고서는 절대 발견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베푸신 첫 기적에 이런 갈등과 숨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웠다.
소설 <예수>의 또다른 강점은 저자의 문학적 상상력의 탁월함에 있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성경에는 아버지 요셉과 아들 예수에 관한 관심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록이 빈약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 행간을 이렇게 읽어낸다. "요셉은 예수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더없이 좋아하게 해준 자상한 사람이다. 입 안에서 아버지라고 가만히 부르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들어준 것도 요셉이다. 그는 요셉 때문에 하나님을 친근하게 아버지라 부르는 습성이 생겼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56). 예수님은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는 독특한 호칭을 사용하셨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우리에게도 "하나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신 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혁신의 시작을 육신의 아버지였던 요셉과의 친근한 관계성 속에서 찾고 있다.
이밖에도 읽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의 이야기이다.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 앞으로 끌고 왔다. 예수님은 땅에 글씨를 쓰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예수님이 '땅에 쓰신 글씨'가 무엇이었는지 성경에는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학자들마다 이런 저런 추측을 내놓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에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172). 궁금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라.
<예수>는 소설로 구성되었지만, 지극히 복음적이다! 문학적 재창조라는 이름으로 복음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어 이해를 돕고 그 깊이를 더해주었다. 특히 '사람 예수'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더하여 주고, 성경 증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한마디로 유익하고 재미있다. '예수'가 살았던 현장으로 독자를 인도하는 <예수>를 통해, 2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시대와 문화와 인종과 지역을 초월하여 놀라운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역사적 예수'를 입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