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홈으로 슬라이딩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8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김선희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5월
평점 :
"여자는 왜 야구를 하면 안 된다는 거지?"
아이오와 주의 시골 마을인 그린데일, 이곳의 후버 중학교로 전학을 온 조엘은 야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열네 살 소녀이다. 전학오기 전, 미니애폴리스의 야구팀에서 ’1루수’로 맹활약한 바 있는 조엘은 후버 중학교에서도 당연히 야구부에 입단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 그러나 코치는 얼굴을 찡그린 채 이렇게 말했다. "여긴 남자팀이다. 게임 하고 싶으면 가서 소프트볼 해라. 여자 운동장에서"(19).
조엘이 야구부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여자라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남자들만 야구부에 들어갈 수 있고, 여자들은 소프트볼만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것은 "여자는 야구를 하면 안 된다"는 편견의 다름 아니다. 인간 사회에는 많은 편견이 존재한다. 시대마다, 문화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편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독 ’여자라서 안 된다’는 편견만큼 시대와 문화와 지역을 초월하여 오랫 동안,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견고하게 작동되고 있는 편견도 없는 듯하다. ’여자라서 안 되는 것’이 야구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후버 중학교의 문제, 조엘의 문제만도 아닌 것이다.
’남자들만 야구부에 들어갈 수 있고, 여자들은 소프트볼만 할 수 있다’는 후버 중학교의 규정은 성차별이 분명하다. 조엘은 누구도, 한 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그 당연한(!) 규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야구부에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의 편견과 규정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굳이 야구부에 들어가지 않고도 야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조엘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잘못된 규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만큼이나 회의적이고, 불가능해보이고, 소모적으로 느껴지는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야구부 코치는 물론 교장선생님과 교육감까지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조엘을 보면서, 나를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장남인 아버지와 셋째 딸로 태어나 바로 아래 남동생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며 자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도 오빠와 차별을 경험하며 자랐다. 늘 억울함을 호소하며 차별에 맞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한 것은 고작 마음에 분노를 쌓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엘처럼 정확하게 어느 부분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부모님께 정식으로 요청한 적이 없다. 잘못된 세상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며, 마음에 분노가 쌓일수록 무조건 남자를 이겨야 한다는 경쟁심만 키웠던 것 같다.
<홈으로 슬라이딩>을 읽으며, 나는 조엘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가는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었다. 야구는 팀플레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즐길 수 없는 게임이다. 야구 선수 출신답게 조엘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원하는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팀플레이를 한다. 조엘은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동지를 찾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중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반대에 부딪치기도 한다. 그러나 열네 살 조엘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할 때도, 룰을 지키며 야구 경기를 하듯 주어진 룰을 이용하여 상대를 설득한다. 그리고 그 설득의 과정에서 ’이해’를 배운다.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나가는 조엘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과 대응방식을 배울 수 있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믿음에 왜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가.
잘못된 규정인데 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가.
꿈을 이루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을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홈으로 슬라이딩>은 수상 이력이 보여주듯 참으로 ’착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잘못된’ 세상을 바꿔나가는 방식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깊이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