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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장 - 일상다반사, 소소함의 미학, 시장 엿보기
기분좋은 QX 엮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장에 가다!
<한국의 시장>, 한마디로 주제는 거창했으나 '의미' 만들기에는 실패한 작업이라 평하고 싶다. 기대가 컸던 것일까. 한국의 시장'을 담아내는 관점의 부재가 아쉽다. "시장이 가지고 있는 멋을 맛있게 전달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지만, 어설픈 감상문에 그치고 말았다. 제주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경기도, 서울 등 전국의 시장을 돌며 열심히 발품은 팔았지만, 시장이라는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해석해내는 '시각'에 대한 고민은 왜 없었을까. 향방 없이 산만한 '수다'의 가벼움이 실망스럽다. 아무래도 '의미' 찾기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 책에서는 '정보'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한국의 시장>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시장>은 '시장'을 또다른 여행지로 제안하고 있다. '시장'은 소박한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상품과 상술만 가득한 대형 마트는 조작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시장'만의 이야기가 있다. 순대국, 감자전, 빈대떡 하나에도 삶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다. 소박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장만의 활기가 존재하는 것은 그곳에 '꿈'이 있기 때문이리라. 멋진 포장은 되어 있지 않지만 하늘과 땅이 함께 빚어낸 지역의 특산물이 있고, 잘 꾸며진 편의시설은 없지만 넉넉한 인심에 마음 한번 쉬어갈 수 있고,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의 친절한 서비스 대신 시장의 명물인 '스타'를 만날 수 있는 곳! 시장은 땀 흘리며 사는 사람들의 삶이 숨을 쉬고, 꿈이 자라는 공간이다.
<한국의 시장>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시장의 풍경은, 아기 옷을 만들고 계셨던 할머니를 만난 제주도 동문시장이다. 할머니가 만들고 계신 것이 배냇저고리라 생각했는데 숨을 거둔 아기 또는 낙태를 한 아기들을 감싸는 수의였다고 한다. 좋은 옷을 입혀 아이의 안타까운 생과 혼을 달려준다는 것이다. "동문시장에 있는 가게 곳곳에 무속신앙의 흔적이 있었다. 가게마다 부적 또는 부적처럼 생긴 종이들이 붙어 있는데 신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제주도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47). <한국의 시장>을 읽으니, 시장이야말로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형 마트 등에 밀려 '시장'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 역시도 시장보다는 마트를 자주 가는 소비자의 한 사람이라 할 말이 없다. 향수와 추억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활기를 잃어가는 시장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음식들이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처럼, 한국의 시장도 '설득력 있는 재발견'의 작업이 필요하리라. 그런 의미에서 첫발을 내딛어준 <한국의 시장>이 고맙고, 그 발걸음이 계속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