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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건져내랴 - 쉽게 풀어 쓴 로마서
조성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성경은 위대하면서도 위험한 책입니다.
어느 유명한 학자의 용어를 빌린다면 ’위대한 위험’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위험’은 <로마서>일 것입니다.
(초대하는 글 中에서)
책을 받아보았을 때 첫 느낌은 소설책인가 했습니다. 아마도 저자 조성기 작가를 소설가로 먼저 만난 탓일 것입니다. 책의 판형이나, 표지나, 구성이 소설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인데, 이 책은 로마서 설교집이면서 동시에 로마서 강해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문학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바울의 독백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설교집이면서 동시에 로마서를 쉽게 풀이해주는 주석에 가깝습니다. 문체는 독특하게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평존칭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지성인의 날카로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성경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동서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현대 신학에서 로마서 최근 연구 동향까지 폭넓은 시야에서 <로마서>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미국의 법학 대학들 중에서는 법적인 논증 훈련을 위하여 로마서를 교과서로 택하는 대학도 있다고 합니다"(18). 그만큼 <로마서>가 조직적이고 이론적인 논증서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헬라어 원어를 중심으로 한 정확한 개념 정리였습니다. 저자는 매 장마다 헬라어 원어로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수고를 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6장 1-11절에 반복되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표현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2절과 10절의 ’죽은’이라는 동사의 시제를 따져보면 직설 능동 과거입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어버린 자라는 뜻입니다. 11절의 ’죽은’은 동사형이 아니고 시체를 말할 때 사용하는 헬라어 형용사 ’네크로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여는 시체라는 말입니다. 죄에 대해여 죽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었다는 것입니다"(336).
이러한 개념 정리 외에도 잘못 번역된 부분을 지적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8장 12-13절에서 ’빚진 자로되’ 하는 구절은 잘못 번역된 구절이라고 합니다. 표준새번역이 비교적 정확하게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에 빚을 진 사람처럼 육신의 요구에 이리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고 있지만,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394). 이렇게 이해를 하면 이해가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헬라어를 통한 본문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등한히 다루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471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로마서 8장까지의 강해를 싣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얼마나 세밀하게 로마서를 읽어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본문도 가볍게 다루는 법 없이 같은 무게감으로 로마서를 읽어내려옵니다. 저자는 로마서의 가치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바울이 다른 서신들을 쓰지 않고 로마서 하나만 썼다고 하여도 그는 신약 성경 저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저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17-18). 이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로마서 8장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이 안에 복음의 핵심 중의 핵심이 모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제목이 주는 뉘앙스 때문인지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누가 나를 건져내랴" 절규하는 바울의 독백이 재구성 되어 있기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죄의 세력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 낀 ’인간 바울’, 복음의 능력을 덧입고 죄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사도 바울’의 몸부림과 인간적인 체취를 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그 건조함이 지나칠 정도로 개관적인 해석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오히려 작가적 상상력이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마도 조성기 ’작가’에 대한 순전히 개인적인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로마서 연구의 의의를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곳에서는 개인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고 기독교 역사를 바꾸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니다. 이것이 로마서를 공부하는 목적이요 이유이기도 합니다"(20). 구원은 공짜이기 때문에 구원받기가 참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 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구속의 원리는 깊고도 깊으며 높고도 높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그 구속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신앙인은 많지 않습니다. 문학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었듯이 조성기 작가는 날카로운 비판력을 가진 분입니다. 이 책에서도 역시 그 날카로운 비판력이 돋보입니다. 성경(복음)을 해석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아니하고, ’지금 여기’ 우리의 상황 속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로마서>를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쪼록 이러한 수고가 한국 교회를 변화시키고, 이 땅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