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비밀 - 어느 위대한 과학자가 남긴 연금술에 관한 위험한 두뇌게임
큐르트 에우스트 지음, 손화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그들이 이기려고 결심했다면, 그들은 승리를 차지하는 동시에 질 것이다.
그녀가 질 것을 예상했다면, 그녀는 패배를 맛보는 즉시 이길 것이다"(533).
 

사실 이 책을 다 읽은지가 꽤 되었다. 그런데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시작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난 느낌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재밌다"고 할 것이다. 비슷한 종류의 다른 책과 무엇이 차별되느냐고 묻는다면, "치말한 묘사에 담긴 문학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대답은 못 된다. ’숫자 6’과 같은 책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208-209).

’천재’와 ’너드’(439)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수학 교수 ’에빈’이 지닌, <다빈치코드>의 ’로버트 랭던’을 넘어서는 그 깊은 매력을 무엇이라 묘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로버트 랭던과는 느낌이 전혀 다른 이 우울한 천재의 수학적 재능은 정교한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두뇌게임에서 독자를 제외시켜 버린다(비대칭 소수, 쌍둥이 소수, 무한 소수 등 숫자의 성격을 알고 있는 독자는 예외). 이 책은 숫자가 트릭이 되기도 하고 실마리가 되기도 하면서, 숫자 때문에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에빈이 풀어주지 않으면 숫자에 담긴 실마리와 철학적 의미를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한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220과 284라는 숫자.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숫자. 같은 운명을 지닌 이 두 숫자. 아이를 함께 가진 사랑하는 두 사람 같은 이 두 숫자. 즉, 284라는 숫자의 인수를 구해 함께 늘어놓으면 220이 되며, 220의 모든 인수를 구해 모두 더하면 284가 되는 이 운명적인 상관관계에 있는 숫자...... 여기에는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공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렇게 될 뿐"(406). (이 설명 속에는 중요하면서도, 놀랄만한 반전이 숨어 있다.)

독자의 조급한 궁금증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작가는 한 동작 한 동작 정성스럽게, 뿌연 창문을 닦아내듯이, 시종일관 팽팽한 긴강 속에서 서서히 이야기의 윤곽을 드러낸다. <뉴턴의 비밀> 안에는 세 차원의 시간대가 존재한다. 먼저는 17세기의 뉴턴, 뉴턴의 비밀을 추적했던 마이의 행적, 마이의 행적을 뒤쫓는 에빈의 시간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다. 베일에 쌓인 과학자, 그 과학자를 추적하는 역사학자, 그 역사학자를 추적하는 과학자가 꼬리를 물고 있는 셈이다.

이야기는 마이브릿 포센의 느닷없는 자살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의 유서가 그녀의 전 남편이었던 에빈에게 전달된다. 유서에 담겨 있는 한 단어가 그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감수’(어떤 수에서 다른 수를 뺄 때, 그 빼려는 수)라는 단어이다. 에빈과 헤어져 핀 에릭과 재혼 후, 스티그와 리네라는 예쁜 아이들까지 낳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살았던 마이, 에빈은 그녀는 절대 자살 따위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마이가 갑자기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에빈은 유서를 통해 마이가 자신에게 무엇인가 암시를 남겼음을 감지하고,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뉴턴’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뉴턴의 비밀>은 전형적이다. 역사적 인물의 숨겨진 비밀, 그 속에 숨은 음모, 이어지는 범죄, 수상한 검은 그림자, 비밀 단체의 존재, 고문서, 수수께끼 같은 단서, 천재적 주인공 등. 그럼에도, 이 책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는 철학적 세계관이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뉴턴의 비밀에 접근했던 마이는 작가적 상상력을 가진 역사학자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천재와 천재를 연결하는 매개이기도 한 마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것은 <뉴턴의 비밀>이 왜 세 가지 차원의 시간 축으로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녀는 시대별로 각기 다른 모습의 사회도,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마치 바퀴와 같은 형태로 돌고 도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 또한 끝없이 돌고 도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시간이라는 것이 무상함과 덧없음, 그리고 한정된 인간의 경험에 묶여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시간 속에는 과거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과거를 보는 시각은 항상 변화해왔다. 그리고 인간은 그 시간이라는 바퀴의 고무 가장자리가 비뚤어지거나, 바퀴에 구멍이 날 때마다 땜질을 해왔었다. 마치 역사학자들이 최대한 확실하고 분명한 과거의 진실을 찾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의무라고 여겨왔던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이면, 새로운 발견으로 지난 시간 역사학자들이 고집해왔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65).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기 때문에, 이 정도 인용은 용서가 되리라 믿고, 좀더 인용을 해본다면,

"작가들과 역사학자들 간에는 공통점도 없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과거의 개념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를 바탕으로 이해한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현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65).

사실 <뉴턴의 비밀>이라는 책의 제목에 비해, 아이작 뉴턴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천재 과학자로 알려진 뉴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다각도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숨겨진 사생활에 대한 ’폭로’에 가깝다. 그것도 터뜨리는 식으로 말이다. 뉴턴의 숨겨진 이면보다는 몰랐던 뉴턴에 대해 더 알게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것조차도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작가적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니 어느 정도의 왜곡을 감수해야만 한다. 다른 것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숨겨두고, 뉴턴에 대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하나만 발설한다면, 에빈이 묘사한 그의 성격에 대해 말하고 싶다.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다른 비밀 회원들과 나누는 일. 영원히...... 에벤이 알고 있는 뉴턴은 결코 그러한 의무감을 좋아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의 연구 결과를 몇 년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숨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단지 타인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371). 어쩌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이러한 그의 성격에 기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재에 대한 가학적인 증오라든지, 폭력에 대한 심리 묘사라든지, 숫에 담긴 철학적인 개념이라든지, 인간이 지닌 ’약점’의 취약성이라든지, 주목하여 관찰하고 깊이 성철해볼만한 주제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수많은 테마 중에 다음의 한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사람들 사이의 어떤 만남은 훗날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393).

역사의 수레바퀴는 아주 사소한 만남을 통해 돌아간다. 그 사소한 만남이 천재 과학자의 운명을 결정했고, 그것이 결국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과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지금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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