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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가다 - 고목나무샘에서 보구곶리까지
신정섭 지음 / 눌와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한강의 발원지부터 서해의 하구까지
천이백 리 물길을 따라가며
생태문화를 답사하다
"우리네 사는 모양도 강물 따라 흘러간다"(머리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 강과 산도 세월따라 변한다. 그런데 강과 산의 모습을 바꿔놓는 것은 세월만이 아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세월만큼이나 강과 산을 가장 적극적으로 바꾸어놓는 주체가 바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인간만 강과 산의 모습을 바꾸어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사람의 삶도 강과 산의 영향을 받으며 변형을 이루어간다. 식수나 땔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며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배운 초등 학문이 기억난다.
<한강을 가다>는 한강의 태생적인 움직임에 따라 생명이 잉태되고, 성장하는 과정을 추적한 '한강 답사'이다. 식물생태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 책이 '생태문화' 보고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태문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도 강의 먹이사슬에 포함되어 있어, 강의 상류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하류에서 사는 사람들의 그것이 같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반대로 강에 사는 생물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강의 생태문화이다"(4).
한강이 흐르고, 한강 따라 생명이 나고 자라며, 역사가 흐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우선은 '내가 알던 한강이 이렇게 긴 강이었나'에 놀라고, 다음으로는 '한강이 이렇게 많은 생명을 잉태한 생명수였나'에 놀랄 것이다. 이 책은 한강의 일곱 물길을 따라 구성되었다. 재밌는 것은 수변 환경에 따라 식생과 함께 사람의 역사와 문화도 변한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간도 자연의 한 자락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식생은 인간의 무분별함을 부끄럽게 만든다. 생태문화는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인문환경까지 함께 고려하여 식생을 살피는 학문이라고 한다.
<한강을 가다>는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의 삶을 함께 성찰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식생을 복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 아니라 하천의 생태 기능을 되살리려는 복원 공사라면 식생을 단순하게 해야 한다"(237)는 조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인간에 의해, 인간만을 위한 자연 개발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요즘 거리마다 한창 선거전에 뜨겁다. 언제부터 '자연'이 '정치적'인 그 무엇이 되었을까. 한강이 훤히 내다보이는 멋진 전망을 가진 아파트나 건물은 프리미엄이 붙는다. 자연을 쪼개고, 구획을 긋고, 흐름을 막아가며 사람이 만들어놓은 '문명' 안에서 질색할 것만 같다. 천이백 리 길 한강의 물길 따라가며 낯설었던 생명 하나 마음에 품을 때마다, 우리 안에 가득찬 욕심이 하나씩 덜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