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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네 살구나무 -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조와 현대 동시조 모음집
김용희 엮음, 장민정 그림 / 리잼 / 2010년 4월
평점 :
시조의 가락과 동심이 만나다!
<분이네 살구나무>는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조와 현대 동시조를 모아 엮은 ’동시조집’입니다. 동시조란, 시조의 형식에 동심의 내용이 담겨진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시조라고 하면 옛날 옛날 수염을 길게 기르고 한문 공부를 아주 많이 한 양반 할아버지들이나 읊조리던 어렵고 따분한 그 무엇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그 시조의 형식에 동심을 담았다고 하니 처음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보통 초장 3, 4, 3, 4 / 중장 3, 4, 3, 4, / 종장 3, 5, 4, 3이라고 하는 정형화된 가락 안에 자유로운 동심의 세계를 담는다는 것이 어려워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나라 전통의 가락과 동심이 만나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했습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분이네 살구나무"(정완영 작)라는 동시조는 이렇습니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 사이
활짝 펴 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정확하게 3, 4, 3, 4 / 3, 4, 3, 4 / 3, 5, 4, 4입니다! 시조의 운율에 맞춰 읽으면 경쾌한 리듬이 기분까지 맑게 해줍니다. 그동안 시조의 가락이 이렇게 경쾌한 운율인 것을 몰랐습니다.
이 책에 실린 64편의 동시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시조 동인회인 <쪽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책이 아니였다면 ’동시조’라는 문학 장르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뻔 했습니다. 이 책의 뒷장에 실린 "동시조 이야기"에 보면, "시조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시조의 운율은 우리나라 고유의 가락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니 시조의 가락에 대한 자긍심이 생겨납니다. 한글의 우수성처럼, 시조의 가락을 더 아끼고 발전시켜 그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깁니다.
"동시조는 시적 이미지와 비유 등 표현 기교를 중시해왔습니다. 시조란 그 정형의 틀 안에서 시인의 시적 상상력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다양한 표현 기법과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까닭입니다."
동시와 동시조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바로 ’정형화된 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형화된 틀과 자유로운 동심의 시계의 만남은 어쩌면 서로 모순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계가 없는 상상력과 자유로움의 세계를 우리 고유의 가락에 담아내는 작업이야 말로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한글의 멋과 가락의 맛을 알아야 탄생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분이네 살구나무>를 읽으니 오랫만에 제 마음도 동심에 흠뻑 젖어듭니다. 책을 읽고 있으니 세상살이에 오염되고 더러워진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되는 기분입니다. 운율에 맞춰 동시조를 읽으니 그 동시조의 내용이 저절로 암기가 되는 체험도 했습니다. 운율에 맞춰 동시조를 지어야 하고, 운율에 맞춰 동시조를 읽다 보면, 머리가 아주 좋아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게임에 길들여지고, 시각적인 놀이에 익숙한 어린이들이 동시조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깁니다. 동시조의 세계는 무궁한 상상력의 세계이고, 아름다운 것과 순수한 것을 느끼게 해주는 미학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욕설’을 많이 사용하는 언어생활에 길들여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달리는 악플을 다는 초등학교 어린이도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지 못한 잘못이라는 반성이 듭니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그런 점에서 동시조라는 아름다운 문학작품 활동을 해주시는 <쪽배> 동회원 회원님들과 <분이네 살구나무>라는 책을 펴내주신 김용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