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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평점 :
사랑을 끝나버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죽음보다 더 분명한 다른 이유를 그려준다.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랑과 죽어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사랑의 빛과 그림자!
한 공간 안에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며 그 경계가 허물어진다. 런던의 관광 명소이기도 한 하이게이트 공원 묘지와 그 바로 옆에 자리한 아파트가 이야기의 주무대이다. 이야기는 로버트의 연인인 엘스페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엘스페스는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는 가족묘지에 묻힌다. 엘스페스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미국에 있는 쌍둥이 조카들에게 남긴다. 단, 부모와 떨어져 런던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1년을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그러나 쌍둥이의 부모인 에디와 잭은 그 아파트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쌍둥이 자매인 줄리아와 발렌티나는 부모님의 곁을 떠나 엘스페스 이모가 살았던 아파트로 오게 된다. 아파트의 윗층에는 신경 강박증 환자인 마트가 살고 있고, 아랫층에는 이모의 연인이었던 로버트가 살고 있다. 로버트는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역사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며 관광객을 안내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강박증 때문에 아파트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마크, 그런 남편을 버리고 떠난 마크의 아내 마레이케, 죽은 연인 엘스페스를 잊지 못하는 로버트, 그리고 이모의 아파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쌍둥이 줄리아와 발렌티나가 서로 이웃으로 얽히면서 이야기는 갈수록 묘한 긴장감을 더해간다.
<내 안에 사는 너> 안에는 수많은 퍼즐 조각이 존재한다. 쌍둥이의 엄마인 에디는 왜 쌍둥이 자매인 엘스페스와 사이가 좋지 않을까(줄리아와 발렌티나는 엄마가 쌍둥이였다는 것도, 자신들에게 엄마의 쌍둥이 이모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엘리페스는 왜 쌍둥이 조카들을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들였을까. 엘리페스가 로버트에게 남긴 일기장에 기록된 그녀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죽은 사람의 공동 거주지인 공원 묘지처럼 아파트는 산 사람들의 공동 거주 공간이다. 죽은 엘리페스를 잊지 못하는 로버트는 그녀와 꼭 닮은 그녀의 쌍둥이 조카 발렌티나와 사랑에 빠진다. 발렌티나는 어릴 때부터 한 몸으로 지내온 언니 줄리아로부터 벗어나 개별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발렌티나를 놓아줄 수 없는 줄리아는 자신을 떠나려는 발렌티나에게 상처 받을 때마다 윗층에 사는 마크를 찾는다. 마크와 줄리아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마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내를 그리워한다.
쌍둥이 자매의 충돌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속과 지배적인 집착, 그리고 사랑하지만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심리를 잘 보여준다. 일방적인 간섭이었지만 줄리아가 사랑으로 돌봐주었던 발렌티나와 마크, 결국 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던 발렌티나와 아내를 되찾고 싶어하는 마크의 선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음미해본다. 스포일러가 아니라면 결말을 공개하며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이다(사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조심스러워 하지 못하는 말이 많다). 죽어서도 서로를 잊지 못했던 로버트와 엘리페스, 그러나 로버트의 새로운 사랑 앞에 혼란스러워 했던 두 사람의 선택 역시 음미해보아야 할 주제이다.
<내 안에 사는 너>, 죽은 엘리페스의 유령이 그녀의 아파트에 나타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작가는 그 경계를 허물며 이렇게 질문하는 것 같다. 사랑을 끝나버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죽음보다 더 분명한 다른 이유를 그려준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확실하게 갈라놓고 말지만, 사랑을 끝내버리지는 못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갈망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배와 간섭, 그리고 그 사랑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한다. 쌍둥이 자매처럼, 삶과 죽음, 사랑과 자유가 한 쌍을 이룬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가족이 있다.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랑과 죽어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사랑, 어느 쪽이든 사랑은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고 모든 비밀이 풀어졌는데도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이야기의 결말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신비롭고 밀도 있는 내용 구성에 비하면, ’결말’이 다소 황당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면서, 사랑이 품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진지하게 음미해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