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디스토피아 :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을 가리킨다. 디스토피아는 현대사회 속에 있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함으로써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명확히 지적하는 점에서 매우 유효한 방법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 두산백과)




현대사회 속에 숨어 있는 위험한 경향을 경고하다!


소설 읽기에서도 세대 차이를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문장이 난해한 것인지, 내가 시대에 뒤쳐진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시처럼 읽어야 하는 것인가. 툭, 툭, 내뱉듯 끊어지는 문장이 독자의 엄청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은유인 듯 아닌 듯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 읽으며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라는 탄식과 함께 말이다. 집필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라는 자격지심은, 쉼표(,)로 끊어지며 툭툭 던져지는 이 심상치 않은 방식의 작품 속에 시대를 통찰하는 날카로운 비판이 들어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리라. 분명 심오하다.

<러브 차일드>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거짓말과 함께 죽은 채로 세상에 토해진" 사생아, 세상이 붙여준 이름은 ’의표폐기물’인, 인간이지만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러브 차일드’가 본 것들의 기록이다. 시대는 분명 미래이고, 주인공의 구체적인 이름은 ’수’와 ’진’이다. 긴 세월을 지나 재활용 심사에서 탈락된 ’폐기물’이 되어 다시 만났다. 이야기는 그들이 태어나는 순간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재의 폐기장으로 돌아온다(6, 5, 4, 3, 2, 1, 7). 독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수와 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복원해간다. 친구였던 그들, 수는 거죽만 남은 늙은이가 되었는데 왜 진은 아직 한쪽 팔을 잃은 아이의 모습인지,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말이다. 

<러브 차일드>를 읽으며 이해하기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이 책의 화자인 러브 차일드의 ’인생"(?)과 실제 세상과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지어야 하는가였다. 진짜 인간 사회라고 느껴지는 부분과 ’쓰레기’로 존재하는 ’러브 차일드’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가. 다시 말해, 수와 진이 거쳐온 긴 세월의 시간들을 읽으며, 3차원의 공간에 대입시켜 해석해내기에는 상상력의 한계를 느낀다.

"딸이 어미를 수거했다. 딸이 아비를 심사했다. 아들이 어미를 분류했다. 아들이 아비를 적재했다. 
그리하여 자식이, 부모를, 폐기했다.
어미의 뱃속에서 이미 난도질되었던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129).


’인간 쓰레기’로 처리되는 그들이 본 것의 기록은, 끔찍한 세상이다. ’인간 쓰레기’로 버려지는 그들이 본 세상은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의 비참함 그것일 따름이었다. <러브 차일드>가 보여주는 미래는 읽어나가기 불쾌할 정도로 끔찍한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발전된 기술에 의해 사생아가 세상에 뱉어지듯, 오직 경제성과 늙은이다움만이 존재하는,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기준으로 인간을 폐기물로 구분하는, 인간성이 거세된 인간의 사회가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거세시켰는가.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러브 차일드>는 이 사회를 규정하고, 이 사회를 작동시키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에 숨어 있는 비인간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따르고 있는 ’사회적 제도’ 안에 얼마나 끔찍한 미래가 숨어 있는지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과 함께 특별히 <러브 차일드>가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사회 제도는 '노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60세 정년'의 사회적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그리고 끔찍하게 조명해볼 수 있다. 쓰레기가 아니라 폐기물로 처리되는 그 잔인한 의미를. <러브 차일드>는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 사회적 안전 장치를 위해 지배층이 고안해내는 법적인 제도, 좀 더 잘 살기 위한 오늘 우리의 분투가, 맞이할, 내일의 실상을 통해 오늘 여기에서 자행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러브 차일드>를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
가공의 이상향, 즉 현실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는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을 ’디스토피아’라고 한단다. ’디스토피아’는 현대 사회 속에 있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함으로써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명확히 지적하는 방식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러브 차일드>가 바로 그러하며, 이것이 <러브 차일드>에 담긴 뜻을 읽어낼 수 있는 열쇠이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러브 차일드>를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