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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바이러스 H2C
이승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H2C = How to Create?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했던가. 나는 매일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이 밀집해있는 거리를 지난다. 대기업 간의 보이지 않는 혈투가 오늘도 치열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늘 이 거리는 소비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창조 바이러스 H2C>는 그 치열한 전쟁터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업계 꼴찌였던 홈플러스를 4년 만에 업계 2위로 올려놓고, 10년 만에 매출 10조 원대 선두기업으로 성장시킨 이승한 회장의 승전보를 알리는 책이다. 홈플러스 신화를 이룩한 이승한 회장의 성공 노하우를 ’6가지 창조 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정리해놓았다. 자기계발서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이승한 회장의 생애사를 따라 서술되어 있어 전기를 읽듯 술술 읽힌다.
솔직히 대형할인매장에 자주 갈 일이 없는 나는 홈플러스의 성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무지와 가까운 곳에 있던 까르푸 매장이 홈에버로 바뀌었고, 그것이 어느 날 홈플러스가 되었다는 사실만 겨우 인식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매장의 변천사를 돌이켜보니, 먹고 먹히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홈플러스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홈플러스가 가진 경쟁력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것을 한마디로 이렇게 평가한다. "시장의 주류였던 창고형 할인점을 쾌적한 공간에서 모든 생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가치점’ 개념으로 바꾸어 세계 유통 시장에 세대교체 신드롬을 일으켰다." 홈플러스 매장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승한 회장이 할인점에서 가장 비싸고 중요한 위치인 1층에 문화센터를 비롯한 각종 생활 편의시설을 배치하고자 했을 때, 외부 유통 전문가들은 "미친 것 아니냐"며 비웃었다고 한다. 이때 이승한 회장이 내놓은 대답은 이것이었다. "CEO가 결정했습니다. 고객이 바로 CEO입니다"(140). 말뿐이 아니라 진정 고객을 CEO로 생각하는 경영 마인드라면, 누구보다 고객이 우선 알아볼 것이다. 홈플러스의 성공은 그러한 진심을 고객에게 인정받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대기업의 경영방식이 양산하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고, 유통시장을 맡고 있는 리더가 매장을 고객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감성을 자극하고,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꿈꾸며, 매장 자체를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적인 자산으로 디자인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식상한 감성 코드로 가식적인 기업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열을 올리는 것보다 참신하고 애국적인 발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이 자기계발서로 읽히는 것은 ’창조 바이러스’에 담긴 메시지가 경영 분야를 넘어 인생 전반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느 자리,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담당하든 최선을 다해 달려온 이승한 회장의 정직한 땀과 성실한 삶의 자세와 열정적인 태도가 오늘의 홈플러스 신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라 본다. "인생의 어느 한때, 너무 몰입해 코피를 흘려본 적이 있는가? 원인은 결과의 거울이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거울에 비춰진 모습이다"(54).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배운 것이 있다면, 겨우 걸음마를 뗀 홈플러스를 세상에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상’을 공략한 전략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시상하는 상이란 상은 모조리 조사하고, 우리가 공략할 상의 쇼핑 리스트를 먼저 정했다. 그 상을 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모든 부문에서 각고의 노력을 시작했다. 수상의 목표를 먼저 정하고 노력한 덕분에 경영의 수준까지 몰라보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94). 이승한 회장의 전략은 멋지게 적중하여 회사의 이미지와 브랜드 인지도를 단기간에 엄청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우리 조직에도 응용해보고 싶은 전략이다.
이승한 회장은 홈플러스 점포를 새로 열 때마다 신임 점장에게 구두 한 켤레와 점장의 이름이 새겨진 의자를 선물해왔다고 한다. 구두는 뒤축이 닮아 없어질 정도로 고객을 위해 일하라는 뜻이고, 의자는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지고 봉사하라는 뜻이다(108). 이승한 회장은 신바람 나는 팀워크를 다지면서 동시에 직원 개개인의 합리성과 유통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개발하는 기업 문화를 창출해왔는데, 그것을 한국의 ’신바람’(Synbaram)’과 서구의 ’합리성(Rational)’을 접목해 ’신바레이션(Synbaratoin)’ 문화라고 정의한다(109). 작은 조직이지만 팀장을 맡고 있는 나의 리더십을 성찰하게 해준다. "탁월한 리더는 대개 단기간의 높은 재무적 성과를 만들지만, 위대한 리더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문화와 시스템을 남긴다. 나는 기업문화가 기업의 마지막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111).
어느 분야이든 ’성공담’을 듣는 일은 언제나 유쾌하다. 편법이나 부정이 아니라, 정직한 성공이라면 말이다. 누구의 성공담이든 반드시 배울 것이 있다. 이유 없는 성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유쾌한 교훈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창조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집념’이었다. 내 인생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경험의 상자 안에 갇히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는 바깥쪽 트랙으로 거침없이 달려 나가며 스스로 대로를 만들어내는 불굴의 신화가 되기를 꿈꿔본다.
이승한 회장은 ’오늘’을 있게 한 창의의 씨앗을 그 뿌리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이 이승한 회장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밥벌이를 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몸으로 일하던 수많은 기억 속에서 노동의 참된 의미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우리의 성장 과정은 함께 일하는 팀워크 속에서 강인함과 인내심, 지혜와 창의성을 키우는 여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17).
창의성은 우리의 머릿속이 아니라, 삶의 자리 바로 그곳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하다. "은혜는 겨울철에 자란다"는 고백에서 겸손과 감사를 배운다. 욕심과 불평이 아니라, 어떤 환경이든 겸손과 감사로 맞이하는 일상 속에 역경의 터널을 뚫고 지나갈 창조적 집념과 나의 삶을 빛나게 할 창조 바이러스가 배태됨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