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1
김이영 원작, 홍우진 지음, 류은선 그림 / 이가서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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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동이>를 원작으로 한 기획동화, 영조의 어머니 ’동이’를 그리다!

 
’대장금’은 역사책에 단 한 줄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 한 줄이 역사적 조명과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50부작이 넘는 대작으로 탄생한 것이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역사를 시청할 때마다, 실제 역사에 얼마만큼 다가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역사 사료가 빈약한 것도 문제이겠지만,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드라마적 재미를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적인 재미를 즐겨야 하는지, 실제 역사를 비판적으로 시청해야 하는지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이가서에서 펴낸 <동이>는 현재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동이>를 원작으로 한 기획 동화라고 한다. 이것이 참 난감하다. 어디까지 실제 역사로 받아들여야 할지 말이다. 물론,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 ’소설’인 것을 알지만, 역사적으로 낯선 인물일수록 한 권의 책이 깊은 선입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위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동이’를 비롯하여 ’대장금’, ’천추태후’, ’미실’ 등 그동안 역사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역사 속 여성 인물들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역사 속 여성 리더십 찾기’ 물결이 유행처럼 번지는 듯 하다. 새로운 소재를 원하는 문학적인 노력이기도 하지만, 남성중심의 역사에 대한 반동이기도 할 것이다. 그 덕분에 역사적 환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하여 반갑다. 

영조의 생모인 ’동이’는 우리에게 ’숙빈 최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장희빈’을 주연으로 한 드라마에 대결구도를 형성하며 그렇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동이’라는 인물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역사 상 처음으로 궁중 최하층의 천민이 내명부 최고의 품계에 올랐다는 데에 있다. 신분계급 중에서 최하층에 속하는 천민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소유물로 취급되어졌다는 점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인 인생 역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녀의 아들은 조선 5백 년 역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영조’이다. 다시 말해, 신분제 사회에서 천민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되었고, 그녀는 왕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동화로 제작된 <동이>는 특별히 왕을 키워낸 동이의 ’교육관’에 무게를 두고 있다.

비극적 운명에 맞서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회에 맞서고, 권력과 정치적인 암투에 맞서며, 운명과 삶을 개척내는 <동이>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지만,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재밌다. 스피드 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녀의 일생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잘 보여준다.

<동이>는 ’숙종’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도록 만들어주었다. 늘 ’장희빈’과 함께 기억되는 숙종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겐 그저 여자 관계가 복잡한 군주로밖에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이>를 읽으며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 사실은, ’숙종’이 매우 개방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개혁가였다는 것이다. 동이는 물론 숙종이 사랑했던 장희빈 역시 양반가의 규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여인을 중전의 자리에 앉히기도 하고, 그 많은 반대를 무릎쓰고 ’동이’에게 첩지를 내리기도 한다. 세자를 책정하는 일에도 탄력적인 사고를 드러낸다. 숙종에게서 영조와 정조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와중에 동이는 숙종의 특별한 배려로 번이 없는 날 욕조 거리 일각에서 동료 감찰 궁녀들과 함께 천인들에게 글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계집종부터 초로의 늙은 갖바치까지 글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66).


’동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역사적 의의 하나가 더 있다. 그녀의 인생은 바로 다른 천민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동이가 천인들에게는 가슴 벅찰 만큼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천인들은 동이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발견했던 것이다. 자신들도 애쓰고 노력하면 오늘보다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과에 응시하려는 자들이 생겨났고, 심지어 어린 계집종조차 글을 배우고 싶어 했다"(66).


그러나 없는 자가 가지려 하는 욕심보다 가진 자가 자기 것을 지키려 하는 욕심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동이>는 역사적으로 가진 자의 정치와 변화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폭력을 잘 보여준다. 동이로 인해 천인들이 희망을 가질수록, 그들을 부려야 하는 양반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때문에 천문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는 ’동이’는 양반들의 표적이 되었고, ’공공의 적’이 되었다. 죽일 듯 으르렁거리던 남인과 서인도 손을 맞잡았다. 

"천인들을 향한 양반들의 핍박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자신들의 질서와 기득권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참으로 놀라운 단결력을 과시했던 것이다"(75).

’동이’가 견디어야 했던 기득권의 저항과 폭력은 실로 견디기 힘든 모멸감이었을 것이다. 평등사회를 부르짖으며 신분제가 없다는 요즘 세상에서도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재벌가와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결국 집안의 왕따를 견디지 못하여 불행해지고 결혼이 깨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동이’는 견디었다. 비록 영조는 평생 자신 안에 흐르는 천인의 피 때문에 평생 열등감을 안고 살았다고 하더라도, 어머니 ’동이’가 버티고 견디어주었기에 그 아들이 왕이 될 수 있었고, 조선사를 빛내는 성군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비록 천민이었지만 그 어머니의 삶 자체가 아들에게 가장 큰 가르침이었고, 정치철학을 세우는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배밖에 채울 줄 모르고, 많이 가지고도 더 갖지 못해 남의 것을 빼앗는 자들이 천한 것이지 이 어미도...... 연잉군도 결코...... 천하지 않다......"(138).

"연잉군의 몸 속에 반은 천인의 피가 흐르기에...... 연잉군은 이 나라 만백성의 진정한 어버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176).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인공 ’동이’가 은근슬쩍 이야기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동이’에서 ’영조’로 중심이 옮겨지면서 ’동이’는 어느 순간 ’죽은 것’으로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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