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놀이하는 인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외쳤던 한 광고 카피처럼, 현대인들은 일과 안식, 일상과 놀이를 구분짓는 경향이 있다. '놀이'는 특별한 이벤트로 우리의 일상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노동자'라 이름하며 '생산성'에 목숨 걸고 사는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은 원래 '놀이하는 존재'였다는 한 인문학자의 통찰이 반갑기만 하다. <호모 루덴스>는 1938년에 발간되어 권위 있는 '고전'으로 통하는 책이라는데, 연암서가를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거의 100년의 기간을 두고 계속해서 읽혀지고 발간되는 것을 볼 때, 여전히 유효하며 권위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인간과 동물에게 동시에 적용되면서 생각하기와 만들어내기처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곧 놀이하기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모 파베르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수준으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를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20-21).

생산성에 가치를 두고 놀이를 '천박한' 것으로 여기는 입장에 선 사람들에게는 '사고의 전복'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획기적이고 신선한 통찰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렇게 확언한다.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문명이 놀이 속에서(in play), 그리고 놀이로서(as play) 생겨나고 또 발전해 왔다는 확신을 굳혀왔다." 문명 속에 자리한 일종의 '놀이 문화'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행위와 문명 자체를 '놀이'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다. 생존 양식과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놀이'가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라는 시각은 문명을 탐구하는 전혀 다른 시각임에는 틀림없다.

<호모 루덴스>는 인간의 몸과 영혼을 동원해서 사물을 표현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에서 발생한 놀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원동력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즉,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놀이가 다채로운 형태로 발전하면서 법률, 문학, 예술, 종교, 시, 철학, 심지어 전쟁까지 놀이가 그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문명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의 개념을 동양적으로 표현하면 '흥'(興)의 개념과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인류의 기원을 '창조'에 두고 있는 부류도 원죄 이후로 노동이 형벌로 전락하여 혹독한 땀을 흘려야지만 생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오고, 인류의 기원을 '진화'에 두고 있는 부류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전쟁터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적인 활동, 즉 '놀이'가 문명의 동력이라는 <호모 루덴스>의 통찰은 인류(삶)의 정체성에 새로운 도전을 준다. 학문적인 견지에서도 의미가 깊은 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생산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더불어 잘 노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준 책이다. 놀기 위해 사는 놀이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삶 자체가 놀이인 제대로 즐기는 즐거운 인생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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