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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평점 :
모든 밀려나는 것에는 사연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준비가 한창이었던 어느 여름 날 오후의 일이다. 비오는 수요일이었다. 점심 도시락을 이미 2교시 어간에 먹어치운 우리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급히 장미꽃 한 다발을 준비했다. 교탁 위에 꽃다발을 올려놓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5교시 수업을 기다렸다. 빗방울을 머금은 장미꽃은 두근거리는 우리 심장만큼이나 열정적인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교실 문이 열리고 조용히 들어오시는 선생님. 우리는 깜짝 놀랄 선생님의 모습을 기대하며, 약속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그대에게 안겨 주고파." 그런데 우리의 노래는 한소절도 지나지 않아 멈추고 말았다. 교탁 위에 올라서신 선생님이 장미꽃다발을 한쪽으로 밀치시며 출석부로 툭툭 그만 노래를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선생님은 우리들과 눈을 마주치시며 굳은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입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이 무슨 한가한 노름이야? 너희반 국어 모의고사 평균이 얼마인줄 알고 있어?" 모의고사에서 또 우리 반이 꼴찌를 했나 보다. 국어 교과서에 시선을 내려뜨리고 있던 내 눈에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느낀 서러움은 실망이 아니라 어떤 배신감이었다. 평소 선생님의 가르침과 너무도 이율배반적인 태도. 그 선생님만은 우리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믿었는데, 그 선생님에게 만큼은 이해받고 싶었는데, 우리의 마음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도대체 왜 우리는 벚꽃 흐드러지는 봄날에도, 아카시아 향기 진한 여름날에도, 비가 내리는 수요일에도 하루 종일 입시 교재에 얼굴을 처박고 앉아 문제를 풀어대고 무엇인가를 달달 외워야만 하는 것인가. ’입시가 우리에게 떨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왜 우리가 그런 절체절명에 끌려가야 하지?’ 내 인생인데,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 당하는 것이 싫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 나는 입시를 포기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방황한 끝에 내가 할 일을 찾았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리고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얼마 전, 자퇴를 선언하며 대자보를 내걸었던 한 고대생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그 고대생을 보니 고등학교 때 그 선생님이 다시 생각이 났다.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묻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반항하고 싶거든 일단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후에 그때 버리라"고. "그것이 정말 멋진 것이지, 대학갈 실력도 안 되는 애들이 대학을 버리겠다고 반항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야"라고 하셨다. 그 고대생은 바로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는 뒤표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효용’이나 ’가치’의 세계로 병합되려는 시대에, 세월의 속도를 감내하지 못해 바깥으로 밀려난 이도 있고 안쪽에 포섭되지 않으려고 맞버티다 ’변방의 우짖는 새’가 된 이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안의 논리로부터 극복된 바깥의 존재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같은 바깥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이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는 기자였으나 목수가 되기를 꿈꾸었고, 목수 공부를 시작했으나 밥값 하는 목수가 되지 못해 신문사에 재입사를 해야 했던, 그러나 기자라 불리기를 거부하는 목수 지망생의 (기획 연재) 인터뷰이다. 책에는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에 머물고 있는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의 인터뷰가 실렸다.
모두가 탐내지 않는 자리에 있기에, 모두의 관심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의 이야기,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연상시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으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던 것처럼, 필자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준다. 그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이름을 말이다. 그렇게 스물여섯의 ’바깥’은 비로소 우리에게 하나의 ’의미’가 된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는 비록 ’바깥’이지만 저마다의 자리에서 나름의 빛깔과 향기를 뿜어내는 ’꿈’을 이야기한다. 강요된 ’안’의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의 저항이라면 저항이다. 세상은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버티고 선 자들 때문에 괴롭다. ’바깥’에서 만난 이들은 주어진 곳에서, 있어야 할 곳에서, 스스로 찾아든 곳에서 미련할 만큼 정직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쩐지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를 읽으며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지향해온 자리, 내가 탐을 내온 삶의 빛깔과 향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지금 있어야 할 곳에 있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이름을 갖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렇게 서로에게 가서 서로의 빛깔과 이름을 불러주는 아름다운 ’꽃’ 세상이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