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벤트 높새바람 24
유은실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할아버지(할머니)를 보내드리는 장례식장에서 인생을 배우다.


네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장례식은 기억나지 않는다. 오빠는 그때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너무 슬프게 울어서 자기도 많이 슬펐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입시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몇 십 년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아직도 외가에 가면 할아버지가 계실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엄마는 외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 여섯 딸들이 밤새 통곡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여섯 딸들이 아버지에게 보내드린 선물들이 포장지만 뜯긴 채 새것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딸들이 보내준 선물이 아까워 두고 보기만 하신 것이다. 엄마는 그것들을 마당에 놓고 태우며 여섯 딸이 많이 울었다고 하셨다. 가장 많은 땅을 가진 마을 어른이셨지만 평생을 부지런히 농사일만 하셨던 외할아버지는 무뚝뚝하셨지만 누구보다 속사랑이 깊은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말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가셨다. 외할머니 앞으로 남겨 놓은 통장, 그리고 할아버지 떠난 뒤에 자식들 눈치 보지 말고 용돈으로 쓰라는 작은 쪽지가 발견되었을 때는 모두 말을 잃었단다. 입금만 되고 한 번도 출금되지 않은 통장, 그 통장에 찍힌 입금일과 액수는  할아버지가 그 돈을 아주 오랫동안 모아 오셨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천성적으로 장례식장에 잘 가지 못하는 나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할머니 장례식장에서도 겉돌았다. 장례식장에 있던 가족 중에 입관에 참석하지 않은 가족은 나뿐이었다. 어른들은 마지막 모습을 봐야 보내드릴 수 있다며 함께 들어가자 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한 방을 써온 나는 마지막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마지막 이벤트>는 유난하게 할아버지와 정이 좋은 손자 영욱이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와 한 방을 쓰며 사이좋은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던 영욱은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게 된다. 할아버지가 미리 준비한 마지막 이벤트 때문에 어른들은 모두 당황하게 되고, 영욱은 그러한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할아버지와 작별한다.

<마지막 이벤트>는 ’장례식’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통해 죽음을 통한 이해와 용서, 그리고 화해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장례’라는 예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풍경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축소해서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 같다. 세상에 태어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때는 대부분 조부모의 장례식장일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 책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장례식장에서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성경에도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한다. 모든 사람이 결국 이르게 되는 ’죽음’을 깊이 생각할 때, 진지한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결국은 한줌 흙으로 돌아갈 인생인 것을 모르고 아옹다옹 다투며, 먹고 마시고 즐기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장례식장에서 인생을 배우라는 것이다. 지혜자의 마음은 잔칫집이 아니라 초상집에 있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대부분 할머니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가득 메우고, 집안의 사회적인 위치를 보여주듯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는 조화의 행렬이었다. 그 요란했던 장례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상실감에 시달려야 했다. 아마도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그 세월만큼 우리는 오래도록 할머니를 추억할 것이다.

<마지막 이벤트>는 장례식과 장례식장이라는 특수한 장치를 통해 용서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우리도 곧 그곳을 통해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이다.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이 가져다주는 삶의 허무와 슬픔은 어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오늘의 미움을 덜어주며, 내일의 욕심을 비워준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지만,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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