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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 1 - 천하제일상 ㅣ 상도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의 신철학(新哲學)을 말하는 <상도>,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다!
나는 어째서 최인호 선생님이 아프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을까. <상도> 개정판을 만나며 쓸쓸해졌다. 부모님이 DVD까지 구매해서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보고 있는 드라마가 바로 <상도>이다. 그 드라마의 원작이기도 한 최인호 선생님의 <상도>를 집에 들고 들어가니 기대했던 것보다 부모님이 더 기뻐하며 반기신다. 서로 먼저 읽겠다고 잠시 아옹다옹 했으나, ’서평’을 핑계로 첫 차례가 나에게 주어졌다. 우리 어머니와 동갑내기이기도 하신 최인호 선생님의 쾌차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읽었다.
2000년에 초판된 5권 짜리 <상도>가 최인호 선생님에 의해 3권으로 다시 태어났다. "천 매 정도 더 털어 내고 문장도 다듬어 다섯 권짜리 대해소설을 세 권짜리 장편소설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최인호 선생님은 "이번 개정판이야말로 작가인 내가 봐도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리된 느낌이다. 새로 낳은 내 늦둥이 새끼를 예뻐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 담긴 선생님의 남다른 애정과 개정판에 대한 만족도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3백 50만 부가 판매된 이 책은 최인호 선생님이 쓴 작품 중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이 그처럼 독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참고로, 드라마 설정과는 상당 부분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독자는 <상도>를 읽으며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역사적 실존인물이기도 한 ’임상옥’은 우리 시대의 갈증이요, 그리움이다. 경제적 위기를 최고의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 통치자도 ’경제 대통령’을 요구하는 경제의 시대에 우리는 ’임상옥’과 같은 한 사람이 아쉬운 것이다. 또한 누구보다 많이 벌었으나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임상옥’의 삶은 무조건적인 ’이윤 추구’에 지쳐가는 우리의 고달픔을 달려준다.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긴’ 임상옥의 상도가 우리의 마음과 삶을 환기시키며 신성한 삶의 공기를 주입해주기 때문이다.
<상도>에서 ’임상옥’의 삶을 추적하는 화자는 작가인 ’나’이다. 어느 날, 기평그룹의 총수 김기섭 회장에 독일에서 신차 시험운행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김기섭 회장의 유품 중에 그의 지갑에서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이란 문장이 발견되고, 회사는 작가인 ’나’에게 그 문장의 출처를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조선 중기의 무역왕 임상옥(林尙沃)임을 알아내고, 그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삶이 역사적인 베일을 벗는다.
오래 전, <상도>를 읽은 독자들의 전화 때문에 최인호 선생님이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했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김정희 선생이 그린 ’상업지도’는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석승 스님이 임상옥에게 전해주었던 ’계영배(戒盈盃)’가 현재까지 전해지는지, 대학로 뒷골목을 다 찾아보아도 여수(如水)기념관을 찾을 수 없다는 문의 전화가 많이 왔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설정이었으나 독자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만큼 역사적인 묘사가 뛰어나고, 흡입력이 강한 이야기라는 반증일 것이다.
최인호 선생님은 이 책의 주제가 ’경제의 신철학(新哲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그 해답을 시대의 거상 ’임상옥’의 삶에서 찾았다. 나는 <상도>를 읽으며 ’세 가지로 짜인 두 조합’에 관심을 두었다. 인물로는 임상옥을 비롯하여 홍경래와 김정희라는 세 인물이 한 조합을 이루고, 상징적으로는 석숭 스님이 평생 맞이할 세 번의 위기를 구해줄 비책으로 임상옥에게 내려준 ’죽을 사(死)’자와 ’솥 정(鼎)’자, ’계영배(戒盈盃)’가 한 조합을 이룬다. 이 조합은 부와 명예와 권력이라는 인간의 세 가지 욕망과 다시 맞물린다. ’죽을 사(死)’자와 ’솥 정(鼎)’자, ’계영배(戒盈盃)’에 숨겨진 의미, 책을 관통하며 이 세 가지 조합이 빚어내는 <상도>의 빛깔이 감탄스럽다. (어쩌면 최인호 선생님이 원고를 덜어내는 수고를 다시 하며 이 책을 ’3’권으로 엮어낸 것에도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혼자 상상해본다.)
부와 권력과 명예의 ’위기’를 지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빈손의 가객으로 죽어 묻힌 임상옥. 그러나 이(利)가 아니라 의(義)를 추구하는 상업으로 그가 남긴 것은 결국 사람이었고, 우리에게는 ’상업의 부처’(商佛)로 남았다.
나의 삶에도 ’계영배(戒盈盃)’ 하나 놓아두고 살아야겠다. 오래도록 소중하게 소장하고 싶은 이 책, <상도>가 내 삶의 ’계영배(戒盈盃)’가 되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