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은 하나의 시련이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249).
다시 사랑은 온다고 마법을 걸어본다.
그리움이 채워지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지금 사랑하라."
"읽고 나면 가슴 속에 깊은 우물이 하나 파인다." 정이현 작가님의 이 말이 예언처럼 들어 맞았다. 가슴 속에 깊은 우물이 하나 파였다. 그리고 잠들지 못했다. 이야기의 잔상이 그 우물 속에서 자꾸 출렁거렸기 때문이다. 그 출렁이는 물결을 타고 묻어두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기억이 나를 아프게 한다. ’옛사랑’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
"네, 제3의 작가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필 작가이다. 그는 사무실 겸 주거 공간인 반지하에 산다. 전화가 오면 상담을 하고, 계약을 하고, 다른 사람의 책을 대신 써준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동네를 걷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그러다 자고 싶으면 잔다. 사먹기도 하고 해먹기도 하고 끼니 대신 술을 먹기도 한다. 그는 그렇게 혼자 산다.
그의 삶에 전혀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필을 하는 그에게도 나름 어떤 원칙 같은 것이 있다. "직업 전선에 나선 마당에 대필에 원칙을 세우는 건 사치다. 그러나, 가져갈 수만 있다면 사치는 가져가는 게 좋다. 정신의 사치는 우울증을 막아준다"(18).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다. 별 계획도 없고, 기대도 없는 일상이다. 특히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런 책 한 권이 세계의 비열한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모른다. 거기까지만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걸어 다니는 동네의 일만으로도 벅차다. 비열한 것은 세계가 아니라 개인들이다"(19).
그의 공간은 그에게 익숙한 동네와 기억이 전부이다. 하루 종일, 그리고 몇 날을, 그를 미행한다 해도 동네 밖으로 벗어나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그래서 더욱 위태로워 보이는 그의 삶과는 달리, 그의 기억은 과거와 현재, 산 자와 죽은 자, 현실과 환상, 우연과 운명을 넘나든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오늘 여기에 이르렀는지 그의 기억(그리고 환상)을 통해 천천히 복원된다. 그에게 있어 산 자와 이루어지는 ’현실’의 소통과 죽은 자와 이루어지는 ’환상’의 소통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그에게는 죽은 자가 보이기 때문이다. 얼핏 어지러울 수 있는 구성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전혀 복잡하지 않게 잘 따라가진다. 단지 읽는 나의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두어야 한다. 너무도 덤덤한 그를 대신하여 나의 마음이 감정의 물결에 멀리 쓸려나가지 않도록 말이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속물적 대결 의식’에 시달렸으나 한 번도 그 대결에서 이겨보지 못한 남자의 일상을 그린다. 혼자 걷고, 혼자 잠들고, 혼자 일어나고, 혼자 일하고, 혼자 먹고, 그렇게 혼자 사는 남자. 그의 눈에는 햇빛도 저 혼자 살아서 아스팔트 위에 쏟아진다. 깊이 잠들어 있는 거리를 혼자 걷는 남자는 생각한다.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다"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준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 속에.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태민이라는 개를 사랑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그의 ’기억’ 속에 있다. 그래서 기억은 쓸쓸하지 않다.
남자는 기억 속에 사랑이 있어 쓸쓸하지 않다는데, 지켜보는 내가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남자는 햇빛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켜보는 내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 이 남자, 어찌 살까. 아니, 지금 이 남자 산 사람인 것은 맞나? <식스 센스>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살아있는 것 같지만 실은 죽은 사람이라는 반전이 결말 어디쯤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사랑은 하나의 시련이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249).
그는 한 번도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충분히 사랑했기 때문인가. 그를 미행하며 오히려 내가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 나야말로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기억을 읽을 때마다 나에게 환청이 들린다. 소리 하나가 툭툭 튀어나온다. 지금 사랑하라고, 지금 사랑하라고, 지금 사랑하라고.
이 책의 제목은 그의 아내가 새겨놓은 문패의 글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어떤 뜻일까? ’아홉 번째 집’의 의미를 알려주는 힌트는 찾았지만, ’두 번째 대문’의 힌트는 찾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랑 다음으로 다시 찾아올 새로운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막연한 생각만 품어본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그가 다시 찾아들어갈 집, 새로운 사랑의 문이라고. 다시 사랑은 온다.
패배의식에도, 상실감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도 무디어져버린 듯한 무감각한 남자. 그에게도 다시 사랑이 올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더 욕심을 내자면, 내가 알아차린 그의 그리움도 꽉꽉 채워지기를, 꼭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괜찮은 그를 대신하여, 전혀 괜찮지 않은 내가 대신하여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런데 남자가 아까 지나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남자는 가야 할 곳이 있는 게 아니다. 살아 있을 때는 저런 식으로 바삐 걸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뚜걱뚜걱, 목적지가 분명한 당당한 걸음걸이는 저 사람의 그리움이다. 그리움이 채워질 때까지 남자는 계속 저렇게 걸어 다닐 것이다"(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