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왜 이 작가는 1964년에 개최되었던 도쿄올림픽을 배경으로 설정했을까. 왜 지금에 와서 ’그때’의 일본을 고발할까. 이미 사회주의는 패배를 인정했고, ’복지’를 앞세운 자본주의는 의기양양 승전가를 높이 불렀는데, 왜 작가는 발전의 그늘에서 착취 당하고 소외 당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까. 일본은 이미 경제적으로 세계의 정점까지 올라가지 않았는가. 이제와서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가 뭘까. 철지난 (사회주의식) 계급투쟁을 다시 벌이려는 것일까. 1권을 읽는 내내 ’왜’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직 어떠한 힌트도 발견하지 못했다.


"올림픽을 인질로 몸값을 두둑이 받아낼 거예요"(414).

1964년 일본은 처음 개최하는 올림픽으로 온통 들떠 있다. 올림픽 개최일에 맞춰 여기 저기 공사가 한창이고, 외국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그러나 급조되고 있는 일본의 ’발전상’은 깊은 그늘을 남기고 있었다. 올림픽 개최지 도쿄에 치우친 불균형한 발전, 철저히 가진 자의 편인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우뚝 속은 도쿄타워 옆의 악취를 내뿜는 뒷골목 처럼 그렇게 공존했다.

<올림픽의 몸값>은 의문의 폭발사고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재는 1964년 10월 10일, 올림픽 개회식 날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중요한 때에 의문의 폭발사고와 함께 경시청에 협박장이 날아든다. 올림픽을 인질로 잡고 국가에 ’올림픽의 몸값’을 요구한다. 올림픽을 무사히 치르고 싶으면 올림픽의 몸값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때가 때이니 만큼 이 사건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가운데 범인을 잡기 위한 총력전이 펼쳐진다.

각 장마다 중심인물이 달라지는데, 세 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한다.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 예능국의 새내기 PD인 스가 다다시. 그는 지체 높은 관료 집안의 철부지 같은 아들이다. 도쿄대를 나왔다. 경시청 수사 1과 5계의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 올림픽을 앞두고 아파트에 입주하여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심 중인데 출산 예정일이 올림픽 개최일이다.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인 사마자키 구니오.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고, 미래가 보장된 엘리트이지만 몹시도 가난한 집안에서 오로지 똑똑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가족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스가 다다시와는 도쿄대 동창. 이밖에도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간다 제면회사’의 여직원 고바야시 요시코가 있다. 비틀즈의 팬인 그녀는 사마자키 구니오를 짝사랑하고 있다.

일본의 문학가로 명성이 자자한 이 대 작가는 1964년으로 돌아가 <올림픽의 몸값>이라는 다소 과장되고 풍자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전개한다. 공부밖에 모르는 순진한 대학생이었던 ’사마자키 구니오’의 의식이 깨어나는 과정을 통해, 착취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불평등을 고발한다. 그 비참함이 차가운 분노로 바뀌면서 사마자키 구니오의 의식을 깨운다.

1권에서는 범인로 지목된 ’사마자키 구니오’를 향해 점점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다. 평생 노동만 하며 살던 형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사마자키 구니오는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기로 한다. 비록 가족이지만 형과는 신분이 다른 도쿄대 학생인 그가 형이 담당했던 노동 현장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육체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타락하고 만다. 자본이 만들어낸 무한한 욕구가 품고 있는 비합리성,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밖에 없다. 세상을 바로잡는 건 프롤레타리아를 빼고는 없다. 고향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피눈물이다ㅡ"(184).

그가 찾아간 곳은 형이 일했던,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거대한 공공사업 프로젝트 현장이다. 착취 사슬로 견고하게 얽혀 있는 노동 현장, 그 가장 밑바닥의 야마신 흥업에 속해 있는 사마자키 구니오는 일본의 실상을 마주한다. "이 나라에는 새로운 유산계급이 탄생하려 하고 있다. 백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눈이 벌게진 일본이다. 그건 즉 노동자 계급을 그대로 존속시키려는 꿍꿍이인 셈이다"(185).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을 때 일어난다는 계급혁명. 올림픽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을 뜨게 된 사마자키 구니오는, 착취 구조의 맨 밑에 있으면서도 쉽게 현실을 받아들여 거의 종복과 같이 생활하는 노동자를 보며 자신이 할 일을 깨닫는다. "노예를 해방시켜주는 것은 노예 측의 지도자가 아니라 지식계급 혹은 유산계급에서 태어나 이질분자, 혹은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이제야 실감했습니다"(354).

그가 올림픽을 인질로 잡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노동자의 목숨이란 얼마나 값싼 것인가. (...) 민중은 한낱 장기 말로만 취급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게 전쟁이었고, 이제 그것은 경제발전이다. 도쿄올림픽은 그 헛된 구호를 위해 높이 쳐든 깃발이었다"(386).

아직 2권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가 어떠한 의도도 아직은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범인은 (거의) 드러났고, 수사망은 좁혀져 오는데, 이야기는 어떠한 결론을 맺게 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196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완전히 과거의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이야기.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소설이다. 그가 다시 ’마르크스 주의’라도 들고 나온 것인지, 소설적 재미를 위한 상징적인 장치인지 지켜볼 일이다. 2권을 끝까지 읽어봐야 하겠지만, 이 재밌는 소설을 가볍게 읽으며 내 안에서도 깨어나는 계급의식을 지금의 정치권이 눈치 챈다면, 긴장할 듯도 한데. 내용의 진지함 때문인지 혹시 이 책이 금서가 되는 것은 아닐까, 혼자 오버도 해본다. (이 소설에 긴장하는 것은 나뿐인가?)

사마자키 구니오와 정반대편에 서있지만 지식 노동자로 살아가는 스가 다다시, 서서히 중산층을 형성하고 있는 오치아이 마사오, 그리고 스스로 테러리스트가 되어 국가적인 반역을 벌이고 있는 순수 청년 사마자키 구니오, 이들이 어떤 결말을 이끌어낼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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