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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과 체찰 - 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
신창호 지음 / 미다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자주 ’성적을 잘 받는 아이’와 ’학문적 소양이 있는 아이’를 가리는 토론을 하곤 했었다. 시험을 보는 요령과 점수 관리에 뛰어난 학생이 있는가 하면, 또래 친구들이지만 ’생각하는 머리’가 뛰어난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물론 ’성적을 잘 받는 친구’를 부러워 했지만, 진짜 존경심은 ’학문적 소양을 가진 친구’에게 향해 있었다. 우리가 그런 구분을 즐겼던 진짜 이유는 어쩌면 ’성적을 잘 받는 친구’들이 진짜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성적’만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편협한 세상에 대한 반항심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불편하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꿈마저 거세 당한 채 성장해야 하는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다시 찾아준 잃어버린 꿈은 ’명문대 진학’이고, 남다른 요령으로 최고의 성적을 받아내는 학생을 ’공부의 신’으로 대접하는 시선이 불편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공부가 아니라 성적 싸움이지 않냐고 되묻고 싶다. 전과목 시험 만점자를 ’공부의 신’이라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성적) 꼴지들이 경험하는 도전과 성취가 ’마음’을 바꿔놓고, 생의 태도를 바꿔놓고 있는 것에 진정한 공부의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퇴계 이황 탄생 510주년 기념판’으로 출간된 <함향과 체찰>은 우리가 젊음을 다 바치면서까지 죽도록 매달리고 있는 ’공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후학들에게 답한 편지를 말년에 다시 추려 엮은 <자성록>을 중심으로 하여 퇴계의 핵심 사상에서 ’공부론’을 추려내었다. 퇴계의 핵심 사상 중에 특별히 ’공부론’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오래도록 교육계의 화두가 되어온 ’인성 교육’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황의 삶을 이야기 하는 <제1부>는 빠르고 재밌게 읽히나, 자성록을 중심으로 이황의 교육 철학을 정리한 <제2부>는 옛 서간문을 풀어쓴 것이여서 단박에 메시지가 파악되지는 않는 약간의 어려움이 잇다. <제3부>는 퇴계 이황 사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토막 토막 정리한 부록의 역할을 한다.
"인성교육을 퇴계의 어법으로 풀이하자면 ’마음공부’입니다(5).
퇴계는 인성교육의 핵심으로 ’함향’과 ’체찰’을 언급하는데, ’함양’이란 학식을 넓혀 심성을 닦는 것이고, ’체찰’은 몸으로 익혀 실천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6). 다시 말해, 퇴계에게 공부란 심성을 올바르게 갈고 닦는 일이며, 체찰은 몸으로 익히는 공부의 가치를 말한다.
"세상의 이치는 일상생활 곳곳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하는 말이나 행동에도 있고, 사람을 만나면서 지켜야 할 도덕이나 윤리 가운데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치는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분명한 것입니다. (...) 이제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버리기 쉽습니다. 아주 고상하고 심오한 내용이나 원대한 것을 공부하여 이치를 빨리 터득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훌륭한 자공도 제대로 못했던 일인데 우리가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공부를 하는데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찾아보려는 괜한 수고만 하게 되고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 연결도 없이 막연하여 실익이 되지 못합니다"(133).
가끔 배움과 삶이 따로 노는 ’위선’을 꼬집고 싶어질 때, 내가 비유적으로 예를 드는 부류가 있다(물론, 이런 위선적인 부류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다). 최고 학부에서 최고의 학위를 받아도 지성인이 아니라는 것을 대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보여준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인격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독서클럽 회원들이 보여준다. <함양과 체찰>은 ’공부’의 참된 의미와 삶으로의 연결을 반성해보도록 도와준다. 교육하는 사람들이나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이다.
"한순간에 문득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처럼, 어둡고 아득한 가운데 그림자만 얼핏 보고서 큰일은 모두 끝났다고 떠들어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궁리한 다음 실천 속에서 분명하게 체득해야 진정한 앎이 되는 것입니다. 경을 중심으로 하여 두 가지 세 가지로 흩어지지 않고 나아갈 때 참된 얻음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치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얕은 것이며, 경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순식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날마다의 생활에서 이루지 못한다면 깨달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