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 그에게는 언제나 그만의 처벌 방식이 있다. 


판권을 보니 1992년도에 초판된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10년 전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몇몇 작품을 읽을 때마다 발견되는 공통분모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그의 시선이다. 그는 결국 범죄자로 드러나는 사람에게 오히려 동정심을 갖게 만드는 '스토리'를 자주 구성한다. '진범'을 처리하는 그만의 독특한 처벌 방식이 있다. '범죄'라는 사건을 풀어가는 그의 추리는 냉철하지만, 그의 화법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교통사고를 소재로 한 <교통경찰의 밤>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러한 따뜻한 심성이 잘 드러난다. 물론,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그의 추리는 언제나처럼 냉철하며 날카롭다.

'교통사고와 교통경찰'이라는 친숙한 소재로 여섯 편의 이야기를 꾸려낸 <교통경찰의 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일본이나 우리나 교통문화가 참 많이 닮아 있다. 교통사고를 냈을 때 경찰이 뭐라고 하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운전자들, 운동기가 있으면 무조건 헬멧을 착용해야 하는데 여전히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목격자를 찾는 방법이나 증언을 귀찮아 하는 목격자의 태도가 우리와 닮은 점도 재밌다. 조금 독특하다고 하면 운전석의 위치가 달라서 생기는 사건 정도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는 각각 신호위반, 교통법규(진로 방해 등), 불법주차, 초보운전, 쓰레기 투척, 그리고 운전미숙과 헬멧 미착용 등으로 인해 벌어지는 '교통사고'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가려내는 일종의 '게임'으로 읽힌다. 여섯 편의 이야기는 각각 독립된 단편이지만, '교통사고'를 풀어가는 일종의 '규칙'이 존재한다. 교통법규라는 원칙이 있고,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사고현장에 대한 조사 등을 종합하여 진짜 가해자와 진짜 피해자를 가린다. 

신호등의 숨은 법칙을 찾아내 신호위반자를 가리는 <천사의 귀>,  교통법규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분리대>, 초보운전자를 위협하는 장난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반성하게 하는 <위험한 초보운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불법주차가 누군가의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불법주차>, 달리는 차에서 창 밖으로 던져진 쓰레기가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보여주는 <버리지 마세요>, 교통사고가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지는 <거울 속으로> 등 여섯 편의 이야기 안에는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하기에는 '섬뜩'한 무엇이 있다. 바로 그 '섬뜩'한 지점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이며, 그가 추리 소설의 대가임을 입증하는 장치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히기시노 게이고는 교통법규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규칙과 처벌을 적용할 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다음의 대화가 법과 처벌에 관한 그의 철학을 잘 대변해준다.

"규칙은 어차피 인간이 만든 거잖아. 그런데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왜 집안을 돕기 위해 일한 사람은 사흘간 정학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방해한 사람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거지?"

"원래 규칙은 양날의 칼이야.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한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지. 그런 경우에 중요한 건 그 칼을 사용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무능하고 멍청한 사람은 날카로운 칼을 형식대로 휘두르거든"(90).

그는 법을 적용하고 법을 준수하면서도, 법의 테두리 안에 잡히지 않는 교묘한 범죄를 그만의 방식으로 처벌한다. 그런 측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의 이야기 안에서 직접 진짜 죄인을 심판하는 '신'으로 군림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범죄'라는 결과보다 범죄의 원인에 무게를 두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죄를 범한 인간에게 따뜻한 동정심과 자비를 베푼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러한 방식이 냉정해야만 하는 범죄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도, 독자에게 따뜻한 마음과 동정심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교통경찰의 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러한 매력을 잘 보여주는 연작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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