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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ㅣ 꿈꾸는 달팽이
게리 D. 슈미트 지음, 김영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내어주는 삶의 한 자락이 필요하다.
대홍수가 이 세상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직전,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노아의 방주에 몰려들어 구원을 요청했다. 이때 ’행복’도 달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는 ’짝’이 있어야지만 탈 수 있었다. 짝을 찾으러 급히 나간 ’행복’은 ’불행’을 짝으로 데리고 와서 노아의 방주에 올랐다. 이 때부터 행복과 불행은 짝이 되어 같이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끝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불행을 멀리하려 하지만, 불행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인생은 없다.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불행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워야만 한다.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휩쓸며 그 이름이 곧 신뢰도의 척도가 된 작가 게리 D. 슈미트, 그는 <트러블>이라는 성장소설을 통해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 한 개인에게 몰아닥친 불행의 불꽃이 가족 전체를 삼켜버리고, 그 불꽃이 지역 사회에 옮겨 붙으면서 인종분쟁이라는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며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는 동안 개인과 개인, 가족과 가족, 인종과 인종의 불행과 행복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엮이는 구성이 돋보인다. 차분하지만 ’가문의 비밀’이라는 숨겨진 코드가 강렬하다.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데도 이야기는 동화처럼 투명하고, 격정적이지 않으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온 가슴에 차오르지만 한 발 한 발 힘겹게 전진하며 결국 비극이 빚어내는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된다.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헨리 스미스의 아버지는 헨리에게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스미스 집안은 정확히 삼백 년 동안 같은 곳에서 살았다. 불행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에서(7).
불행과 멀리 떨어져 살았던 헨리 가족에게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불행이 들이닥쳤다. 모든 이의 우상이었던 헨리의 형 프랭클린이 트럭에 치이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헨리네 가족의 삶은 온통 불행으로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헨리네 가족을 집어삼킨 불행의 불꽃은 지역 사회로 옮겨 붙는다. 헨리의 형 프랭클린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캄보디아 이민자인 ’차이’의 트럭에 치인 것이 문제였다. ’난민’이 되어 흘러들어온 캄보디아 이민자들, 그 땅의 주인임을 자처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그들은 ’무단 침입자’였으며, 야유와 멸시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캄보디아 이민자의 트럭이 프랭클린을 친 것이다. ’차이’는 단순한 사고라 했지만, 사람들은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면서 점차 폭력적인 인종분쟁으로 불행의 불길이 번진다.
형의 불행이 ’잘려나간 팔’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 죽음으로 끝을 맺자 절망한 헨리는 형과 함께 오르기로 했던 ’카타딘 산’으로 향한다.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익사할 뻔한 것을 헨리가 구하게 되어 함께 살게 된 ’검둥개’와 친구 ’샌번’과 함께.
헨리는 ’카타딘 산’에 오르는 동안 우연히 형을 죽인 ’차이’의 트럭을 얻게 타게 된다. 그렇게 헨리는 ’차이’와 만나면서,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짓지 못했던 ’차이’의 불행을 목격하게 된다. 형을 죽인 그 ’차이’의 처절한 불행을 말이다.
또한 헨리는 우연히 카타딘에서 모은 물건을 전시한 작은 박물관을 들르게 되었다가 그곳에서 놀라운 ’가문의 비밀’을 목격하게 된다. 북쪽 지방 해안에서 가장 멋진 해변을 소유하고 있고, 아버지는 잘나가는 회계회사의 사장이며, 교회에는 1680년부터 내려오는 헨리네 전용 자리가 있고,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에게 특별 대우를 받으며 누려온 그 모든 부요함과 달콤한 행복이 사실은 누군가의 행복을 짓밟은 엄청난 불행 위에 지어진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뿐만 아니라, 형의 죽음 뒤에 가려진 엄청난 진실까지.
"아무리 멀찌감치 집을 지어도 결코 떼어 낼 수 없는 불행. 태평양을 건넌다 해도, 심지어 대륙을 건너간다 해도. 새 언어를 배운다 해도"(337).
캄보디아 난민들을 무단 침입자 취급을 하며 주인 행세를 했던 백인들은 인디언의 땅을 빼앗고 그들의 불행 위에 집을 지은 것이었다. 우리는 나의 행복을 위해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불행을 막아내는 동안 그 불행이 나를 덮쳐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불행에게 삶의 자리를 내주어야만 한다.
<트러블>이 말하고 있는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은 무엇일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불행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불행과 공존할 수 있을까? <트러블>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서로에게 닥친 불행을 이해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찾아진다. 매를 맞고 굶주린 채 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검둥개를 헨리가 구해준 것처럼, 매를 맞고 굶주린 채 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차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안에서 서로에게 닥친 불행이 치유될 수 있는 길을 본다.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불행이 우리를 덮쳐온다 해도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안에서 우리는 은총을 발견할 수 있다. 불행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꽉 채운 삶이 아니라 삶의 한 자락 누군가를 받아들일 여백이 필요하다.
"매를 맞고 굶주린 채 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것을 헨리가 구해 준 검둥개. 헨리는 다시 검둥개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검둥개는 어떻게 해서 바다에 빠졌을까? 헨리는 차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검둥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기가 참 바보였구나 하고 깨달았다.
헨리가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었다.
세상은 불행이다. 그리고 …… 은총이다. 정말로 그렇다"(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