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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한자 쉽게 끝내기 - 개정증보판
이래현 지음 / 키출판사 / 2009년 8월
평점 :
한자, 스토리(뜻)와 이미지로 익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반 담임선생님은 작곡을 전공하신 음악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매일 아침 자습 시간에 우리반 학생들에게 특이한 미션을 주셨다. 매일 아침마다 한자 10개씩을 외우도록 한 것이다. 영어 단어도 아니고, 중요 과목도 아닌 ’한자’를 외우라니! 우리는 납득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치루었던 ’연합고사’에는 한문이 겨우 4문제밖에 출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의고사를 풀 때에도 한문 문제는 그냥 찍는 친구들이 많았다.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만큼 배점도 낮은 과목인데, 황금같은 아침 시간에 강제적으로 ’한자’를 외우도록 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담임선생님은 매일 시험까지 보셨다!
결코 현명한 입시전략이라고 할 수 없고, 소문을 들으신 한문 담당 선생님도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로 엉뚱한 공부였지만, 우리는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지시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매일 그렇게 습관처럼 한자를 외우던 우리 반에 기적이 일어났다. 중간고사에서 한문 과목의 학급 평균이 96점을 기록한 것이다! 한문 선생님은 다른 반들과 평균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는 이유로 우리반 반평균을 깎기 위해(!) 말도 안 되게 엄격한 기준으로 주관식 문제를 다시 채점하기도 하셨다.
지금 다시 그 담임 선생님을 만난다면 어떤 의도로 우리에게 한자 공부를 시키셨는지 여쭤보고 싶다. 선생님께서 직접 그 뜻을 밝혀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죽어라고 해도 안 되는 과목이 있었지만 한문 공부는 ’암기’만으로 눈에 띄는 실력 향상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포기했던 과목이고 겨우 4문제가 출제되었지만, 우리는 그 4문제에서 만점을 받을 때마다 어떤 성취감과 특별한 기쁨을 맛보며 적어도 ’한자’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그 해 1년 동안 반 강제적으로 외운 한자 실력으로 내가 평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중학교 3학년이 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한자를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국어 과목에서 필요한 한자를 외워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미 중학교 2학년 때 익힌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다시 한자 공부의 필요를 느끼고 있다. 어렸을 때 암기한 한자를 많이 잊어버리기도 했고, 주로 어른들께 명함을 받았을 때 읽지 못하는 한자가 더러 있어 당황한 경험이 몇 번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끔 모르는 한자를 찾아보려 할 때, 부수를 몰라 <옥편>을 갖고도 한참을 헤매는(!) 경우도 잦다.
중국어를 공부하시는 아버지와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을 목표로 하고 있는 동생 덕분에 우리집에는 한자 관련 학습 교재가 꽤 많은 편이다. 그런데 주로 문제지 위주의 교재라서 한자를 익힐 교본을 찾고 있었다. 옥편을 펴놓고 무작정 암기를 해보려는 무모한(!) 시도도 해봤지만 금방 지루해졌다.
<꼬불꼬불 한자 쉽게 끝내기>는 그런 내게 안성맞춤인 교재이다. 그림과 글자를 연관시킨 한자설명이 스토리와 함께 머리에 이미지로 남기 때문에 암기 효과가 정말 탁월하다. 예를 들면, "쌀(米)을 헤아려(量) 확인해 놓은 양식"이라는 설명으로 "양식 량(糧)"를 익힌다. 설명과 연관된 그림이 한 번 더 시각적인 효과를 준다. 설명 자체가 하도 탁월해서 재밌게 읽으면서 한자의 형성 원리도 깨우치고, 뜻도 이해하고, 뜻 글자인 한자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저자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처럼 이 책을 활용하여 한자를 쉽게 익힐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주는데, 정리를 하면 이렇다.
첫째, 부수 214자의 음과 뜻을 정확히 암기한 다음, 한자 공부에 들어간다(이 책의 부록에는 부수 214를 한눈에 보며 익힐 수 있는 ’부수 214 연상이미지 브로마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 하나 이상의 뜻을 가진 부수를 모두 암기해 두면 한자 학습에 편리하다.
셋째, 연상 작용을 활용하여 암기한다.
뿐만 아니라, ’한자하우스’(www.hanjahouse.co.kr)에 접속하면, <꼬불꼬불 한자 쉽게 끝내기>의 저자 이래현 선생님이 직접 강의한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고 한다.
<꼬불꼬불 한자 쉽게 끝내기>는 한자가 만들어진 원리에서부터 부수자(214), 한자(2000)자, 그리고 기출문제 한자어와 각 급수별(8-1급) 고유한자까지 수록하고 있어 한자를 익히며 시험에 대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60만 부를 돌파한 <꼬불꼬불 한자 쉽게 끝내기>의 저력이 느껴진다. 재밌고 알차다.
많이 잊어버린 한자를 다시 암기하고, 가끔 명함을 받을 때 읽지 못하는 한자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는 것이 나의 소박한 일차 목표이지만, 욕심을 낸다면 간혹 한자를 읽지 못하는 동료나 후배들에게 막힘 없이 한자를 읽고 해석해줄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면 좋겠다. 한자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도, 그저 한자를 익히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