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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
크리스토퍼 듀드니 지음, 진우기 옮김 / 예원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시간을 말하다.
꽤나 집중력을 요하는 책이다. 언제가 읽었던 과학자의 책을 읽으며, 시간은 ’없는 것’이라는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했던 노력의 두 배쯤 더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그러나 하나씩 끊어 읽을 때는 무엇인가 감이 잡히는 듯 하다가, 통합적으로 이해하려 하면 읽은 것들이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아무튼 당황스러운 책이다. 긴 사색의 고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어쩌면 통합적인 이해보다 사색의 고리를 하나씩 끊어서 읽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듯하다.
’찰나에서 영원까지, 시간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는 저자는 시간의 ’찰나’를 지루하도록 정밀하게 포착하며, ’영원’의 지평까지 탐색한다. 매우 사적인 일상에서 시작되는 작가의 ’시간’ 관찰은 겨울에서 ’봄’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뜨락에서 시작되어 한 해 동안의 계절을 돌아 다시 눈 내리는 ’겨울’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관찰된 사소한 에피소드를 ’문’으로 하여, 철학, 예술, 신화를 넘나들며 시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끝끝내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한 내 머릿속에 이 모든 설명들이 ’조각보’처럼 이어져 있다.
"이것, 이 현재는 어디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이해 속에 녹아 있고 우리가 접하기도 전에 달아나며, 존재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윌리엄 제임스, 39).
잡으려는 그 순간 이미 달아나버리는 ’시간’처럼 ’시간’ 그 자체가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의 해박함이 부러우면서도, "시간의 역설에 빠져들수록 나는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더 알게 된다"(39)는 작가의 고백이 위안이 된다.
"하지만 좀 더 엄격한 문자적 의미에서 볼 때 ’현재’라는 시간은 없다. ’지금’은 우리가 작업해야 하는 전부이고 ’지금’은 내가 시간을 접촉하고 그것을 새로이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지점이다"(38-39).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념일 뿐이고, 우리는 오직 ’찰나’를 지나는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 붙잡을 수 없지만 그 ’찰나’를 붙잡아야 한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우리는 시간을 지도처럼 사용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디 있었는지 가리킬 수 있고, 또 어디로 갈 것인지 계획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의 지도 제작사이다"(201).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시간’의 관념은 현재의 삶에 방향을 잡아준다.
"시간을 좀 더 확보하는 방법, 주변 세상의 속도를 감속시키는 분명한 방식은 우리가 가진 제한된 시간을 더 알차게 쓰는 것이다"(209).
언젠가 한 목사님이 시간을 활용하는 지혜를 말씀하시며, 우리가 아침에는 ’분’과 ’초’를 계산하여 생활한다는 설명을 하신 적이 있다. 대부분 아침에는 지각하지 않기 위해 ’분’을 다투고 ’초’를 다투어 시간을 쪼개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침보다 여유로운 저녁 시간은 상대적으로 ’낭비’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으면 향략과 쾌락에 젖기 쉬운 ’밤 문화’가 아닌, ’아침 문화’를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시간’에 관한 온갖 사색과 관념과 설명과 이론을 모두 이해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시간을 살고 있고, 그 시간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며, 그 시간을 소중하게 써야 한다는 평범한 진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