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눈물 샘깊은 오늘고전 12
나만갑 지음, 양대원 그림, 유타루 글 / 알마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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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병자년, 그때 일을 잊을까 걱정스러워 기록한다"(140).


현재 우리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는 20년 전 처음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의 5대 후손에 해당한다. 신기하게도 이 강아지들을 보면, 제 어미와 할머니의 특이한 버릇과 신체적인 특징을 그대로 닮아 있다. 5대째 이어지는 강아지를 지켜볼 때마다 ’뿌리’와 ’혈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내 앞에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역사적인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고나 할까. 내 몸 안에 흐르는 피, 그 핏속에 과거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오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살아온 역사, 부모님이 살아온 역사, 집안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 그리고 민족과 나라의 역사를 기억하고 배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울 때마다 누가 알까 지워버리고 싶은, 절대 부정하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을 만난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임금이 다른 나라 임금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처박으며 굴욕적으로 항복 의식을 치뤘던 ’삼전도의 치욕’이다. 

그러나 치욕적인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다. "잘나고, 자라스럽고, 번듯한 역사만이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는 못나고, 부끄럽고, 초라한 모든 기억과 시간도 함께 품고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집니다"(141). 역사는 ’부정’이 아니라, 기억하고 되새겨야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같은 잘못과 같은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남한산성의 눈물>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임금과 함께 들어가 직접 전쟁을 겪으며 생생한 전쟁 기록을 남긴 공조 참의 나만갑의 <병자록>을 ’오늘’ 우리의 말로 다시 다듬어 쓴 책이다. "<병자록>은 병자호란이 일어나기까지의 상황,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와 외교, 주화파와 척화파의 갈등, 군인과 백성의 동정, 항복 의식의 세부, 병자호란 마무리 들을 모두 망라한 자료로서 57일간의 병자호란 일지를 포함"하고 있다. 

나만갑의 전쟁 일기는 370여 년 전 절박하고 참혹했던 병자호란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김훈 선생님의 <남한산성>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소설이 아니라, 역사의 ’사실’과 직접 만나는 ’민낯’의 신선함이 있다.

당시 국제정세에도 어둡고 국방을 지키는 일에도 안일했던 우리나라 조정은 청나라 군사들이 ’바람처럼 사납게 다가오고 있음도 까맣게 몰랐다’가 피난할 타이망마저 놓치고 급하게 ’남한산성’으로 피해 들었다. 

나만갑의 일기에 기록된 병자호란은 ’전쟁’이 아니라, 차라리 한편의 촌극 같다. 병자호란이 진짜 부끄러운 이유는 우리나라 임금이 굴욕적으로 항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더 없이 치욕스럽게 만드는 것은 한 나라의 지도자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벼슬아치들의 추태이다. 청나라를 업신여기고,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면 곧장 물리칠 것처럼 큰소리쳤지만, 정작 전쟁이 벌어지자 모두가 우왕좌왕이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병사들을 비를 맞혀 얼어 죽게 하고, 한양을 지키기로 한 심기원은 거짓으로 승리했다는 보고를 올리고, 아무 계책도 없이 부하 병사들에게 칼을 휘둘러 적진에 뛰어들게 만들어 결국 모두 떼죽음을 당하게 만들고, 그 잘못을 다른 장수에게 뒤집이 씌우고, 장수는 적의 목을 베어오겠다며 허풍을 치더니 이미 죽은 우리 병사의 목을 베어 왔다. 

그 와중에 똑똑하다고 하는 대신들은 전쟁을 끝내기를 주장하는 ’주화파’와 절대로 굴복하지 말고 청나라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척화파’로 분열되어 싸워댔다. 적군과 아군도 구별 못하고 싸워댔다. 서로 힘을 합쳐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해야 할 대신들이 청나라 군사가 아닌, 명분만을 앞세워 서로 옳다고 싸워댄 것이다. 그때의 한심함이 오죽 했으면 ’까치집’에 희망을 걸었겠는가. "(30일) 행궁 근처에 까치 떼가 모여 집을 지었다. 사람들이 까치집을 쳐다보며 좋은 징조라고 했다. 성안에서 믿을 것이라곤 오직 이것뿐이니, 얼마나 절박했으면 다들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43).

나만갑의 기록에서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그가 당시의 영의정 ’김류’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일기 곳곳에 김류와 그 아들 김경징의 과오가 상당히 감정적인 평가 속에 기록되고 있다. "(13일) 조정에서는 강화도로 들어가서 적의 침략에 맞서자는 결론을 냈다. 강화도 검찰사에 김경징이 임명되었다. 그런데 원래 김경징은 큰 임무를 맡을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김경징의 아버지인, 영의정이자 도체찰사인 김류도 이 점을 잘 알았다. 그런데도 아들이 검찰사로 임명되자 오히려 칭찬했다"(21).

<남한산성의 눈물>은 57일 간의 전쟁 일기 외에도 나만갑이 남긴 또다른 기록 <강화도에서 있었던 일>과 전쟁 후의 기록을 짧게 전하며 이렇게 말한다. "조정은 패배와 항복의 책임을 그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138) 있었다고.

솔직히 ’오늘’의 우리 모습을 보면 <남한산성의 눈물>이라는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370년 이라는 시차가 있을 뿐이지 그때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지워내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를 또 다시 후손에게 남겨줄까 두렵다. <남한산성의 눈물>은 치욕의 역사를 반추하며, ’오늘’을 비춰주는 소중한 거울이다. 이 짧은 책을 읽으며 내용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치욕의 역사이지만, 역사가 남긴 교훈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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