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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콘서트 ㅣ KTV 한국정책방송 인문학 열전 1
고미숙 외 지음 / 이숲 / 2010년 1월
평점 :
인문’학’(學)의 위기?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의 위기?
대학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 방식으로 표명하여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켰던 무렵(9), 나는 생각했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말하여지는데, 어떤 점에서 위기라고 하는 것일까?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대학교에서 비인기 학과로 전락하는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한마디로 ’인문학이 장사가 안 되는 것’이다. (솔직히 요즘 대학교 행정을 살펴 보면,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먹고 사는 문제에 큰 도움이, 아니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소외되고 국가 지원 정책에서도 소외되는 점을 ’인문학의 위기’라고 한다면, 인문학이 진짜 밥벌이가 안 된다는 또 하나의 반증인 셈이다. 어쩌면 이러한 사고 방식 안에 진짜 인문학의 위기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한 후배가 "21세기 인문학은 자연과학과의 대화 없이는 희망이 없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인문학은 이미 자연과학이 세계를 보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 후배는 그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위기라고 했었다. 후배의 논리를 차용하여 조심스럽게 비판을 하자면,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학자들마저도 (이율배반적이게도) 그 진단의 저변에는 ’인문학이 장사가 안 되는 점을 우려하는’ 자본주의적이고 상업적인 패러다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 콘서트>는 K-TV의 ’인문학 열전’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인문학 열전’은 "출연자가 눌변이어서는 ’안 된다’는 평가를 무시하고 오로지 해당 분야에 대한 그분의 학문적 역량만을 평가"하여 출연자를 선정했다. 인문학적 담론에 참여한 열네 분의 출연자는 그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진행자였던 김갑수 선생님은 높은 시청률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 용감한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그 무모하고 용감에 도전에 박수로 응원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인문학적 관심’을 환기시키자는 기획 의도에 비해, 프로그램의 포맷적인 측면에서 보면 ’신선한’ 기획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學)적인 ’근엄’한 대담이 오고가는 동안 철저히 ’듣는 자’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이 인문학적 ’소통’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學)의 ’소개’에 더 치중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개그맨 김미화 선생님이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처음 맡을 때, 청취자의 입장에 서서 ’무식한 질문’도 용감하게 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는 인터뷰 내용이 기억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문학적으로도, 방송에 대해서도 무식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만,) 인문’학’(學)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적 관심’에 초점이 있었다면,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분’처럼 포맷적인 측면에서 조금 더 ’과감한’ 교양 프로그램을 기획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책으로 만나본 <인문학 콘서트>는 인문’학’(學)적 담론을 형성하는 주제의 다양성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의 동향까지 가늠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책에 실린 인문학적 담론들을 소화해내는 것만으로도 지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만큼 '고급'이며, 내용을 곱씹는다면 중요한 삶의 이슈를 ’사고의 체계’를 가지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본다. 책의 내용이 완전히 소화되어 인문학적 각성이 내 안에서도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