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어차피 벌어진 일, 이왕 사는 것, 그래도 웃자고요!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라는 소설의 제목에 어떤 상징성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상징이 아니라 프랑스의 의료 현실을 보여주는 사실적인 풍자였다!

감사하게도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닌 경험이 열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건강하게 살았다. 주로 문병을 위해 갔지만, 병원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은 안 좋은 기억뿐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아픈 곳을 낫게 해주는 고마운 곳인데 병원을 생각하면 곧 불쾌해지고 마는 것이다. 아픈 것이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 양 불친전한 분위기에, 예약을 하고 가도 마땅한 절차처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긴 대기 시간, 그리고 어려운 의학 용어 때문에 괜히 무시 당하는 듯한 기분, 게다가 검사 한 번 할 때마다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를 읽어 보면, 그래도 프랑스보다는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의료 형편이 조금 더 낫지 않나 싶다.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는 황혼기를 맞이한 작가가 2년간 병원에서 벌이는 눈물겨운 투병일지이다.

주인공인 ’당신’은 2000년 1월 14일 오전 5시 15분에 서재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170센티미터 아래의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인 바닥 위로 곤두박질을 쳐서 축구공처럼 정신없이 데굴데굴 구르다가 탁자 다리에 걸려 간신히 멈췄다. 처음엔 아무런 통증이 없는 기적에 감사했지만, 곧 깨달았다. "너무 빨리 감사하면 안 돼!"

결국 극심한 통증으로 병원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받지만, 단순한 타박상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진통제 몇알만 처방받아 돌아왔다. 그러나 계속되는 통증은 약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수소문 끝에 다른 의사에게 어렵게 어렵게 진찰을 받고, 골절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어 심장수술까지 받아야 한다. ’당신’의 병원순례는 그렇게 계속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반복되는 병원순례에도 계속 웃을 수 있는 ’당신’의 못 말리는 ’낙천성’이다. 아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일텐데,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예약시스템과 불편, 의료진의 무성의, 게다가 오진까지 ’당신’은 그 모든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잘도 견디어낸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세상을 살면서도, 순간 순간 발작처럼 일어나는 우리의 분노는 끊없이 불만과 불평과 비난을 쏟아내며 "도대체 왜 이렇게 합리적이지 않은 거야" 따지느라 기운을 다 소진하고 있는데, ’당신’은 웃고 있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날카로운 풍자는 부조리한 현실을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당신’을 보며, 오히려 삶 앞에 숙연해졌다. 바보 같은 웃음이 우리의 팍팍하고 비좁은 마음에 넉넉한 삶의 여백과 여유를 만들어준다. 무엇이고 화를 내서 해결될 일은 없음을 배운다.

답답하고 한심하고 막막하고 화가 나는 상황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재치 있는 웃음을 선물해준 당신이, 그리고 '당신'의 말이 나를 많이 웃게 한다. "웃음이 병을 낫게 도와준답니다."(2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