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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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세 가지 만남'의 축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을 꼽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부모, 친구, 배우자를 꼽기도 한다.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대중과 함께 호흡해온 문학 작가 최인호, 어느 새 육십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긴 그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만남'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펴냈다. 그는 그 만남을 <인연>이라 부른다. 필연이요, 운명이라는 뜻이리라. 부모와의 만남, 스승(친구)과의 만남, 배우자(자녀)와의 만남까지 <최인호의 인연>은 그들과 함께 걸으며 누렸던 축복의 기록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최인호의 인연>은 제법 먼 길을 함께 걸어온 '길동무'들이다. 한땀 한땀 수를 놓듯 그들과 함께 걸어온 시간들이 모여 '최인호'의 인생이 저만의 무늬를 가진 당대의 작가로 완성되어져 간다. 그는 인연 하나를 더할 때마다 지혜의 구슬 하나씩을 얻어 삶의 자락에 꿰었다. <최인호의 인연>은 이런 말을 내게 속삭인다. 만남의 축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그것이 생(生)의 지혜라고.

 

<최인호의 인연>은 친구들의 엄마처럼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엄마를 부끄러워 했지만, 그 엄마의 유전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교훈을 얻고 감사한다. 싸우고 토라지면 며칠이라도 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아내이지만, 그 아내와 만나 결혼한 것이 '기적'임을 알고 감사한다. 무조건 아버지의 편이 되어 아버지를 위해 싸우며 달려드는 어린 딸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감사한다. 스승과 모든 벗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맛난 칼국수에서도 지혜를 배우고, 뜰 안에 숨어든 느닷없는 개구리에게도, 죽은 듯 했던 난초가 꽃을 피워내는 것에서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깨닫고 전율한다.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만남'의 기회를 가지지만, 그것이 모두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지지는 않는다. 뜨거운 심장 속에서 따뜻하게 데워지고,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끌어안아야 비로소 '인연'이 되는 것이다. 막연한 운명을 기대하며 만남을 흘려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더운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순간의 만남을, 일상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필연도 운명도 찾아오는 것이리라.

 

<최인호의 인연>은 말한다. 우리 사이에 인연의 강이 흐르고, 인연이란 사람이 관계와 나누는 무늬라고. <최인호의 인연>의 무늬는 우리 부모님을 닮아 있다. 가난한 시절의 기억, 사랑이 곧 희생이었던 부모님의 삶, 따뜻하게 살을 맞대고 자란 형제, 힘들어도 견딜 힘을 주었던 가족, 억척스럽게 일군 꿈, 사람 사이의 소박한 정과 겸손,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 그 인연의 강이 흘러 오늘의 내가 있음을 안다.

 

평범한 삶에서 지혜를 길어올린 <최인호의 인연>을 옹달샘 삼아 그 투명한 물결에 내 모습을 비쳐본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나는 어떤 인연의 강 속에서 어떤 관계의 무늬를 만들어왔을까.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가? 그 많은 인연에 감사했던가? 소중하게 가꾸어왔던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었던가? 인연의 강 안에는 사소한 만남도, 의미 없는 만남도, 불필요한 만남도, 우연한 만남도 없는 것 같다. 나와 <인연>이 되어준, 그대가 있음에 감사하며, 뜨거운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한땀 한땀 아름다운 무늬를 소중하게 놓아가고 싶다. 최인호 선생님이 들려주신 김광섭 시인의 시를 노래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랴.
 
최인호 선생님, 선생님과의 만남도 제게는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며 울고 울었으니까요.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저와 선생님 사이에도 인연의 강이 흘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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