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재단사가 사는 동네 꼬리가 보이는 그림책 1
러쉰 케이리예 지음, 정영문 옮김 / 리잼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무서운 재단사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단편영화 부문에 애니메이션 영화로 상영된 작품이 동화책으로 나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교활한 재단사와 젊은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고 한다. 어린이 그림책처럼 정사각형 판형으로 40페이지의 얇은 동화책이지만, 검은색과 황금색이 조화를 이룬 (다소 어두워 보이지만) 강렬한 일러스트와 이야기가 전해주는 교훈, 두 가지 모두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는 수준작이다. 일러스트도, 이야기도 한마디로 고급스럽다.

아주 조용한 동네에 ’레자드’라는 청년이 당나귀를 타고 들어와 주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이 동네에는 손님의 옷감을 몰래 잘라내 훔쳐가는 무서운 재단사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레자드는 재단사에게 옷감을 도둑 맞는 동네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신은 그 재단사를 혼내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내기를 한다. 재단사가 레자드의 옷감을 훔쳐가면 자신의 당나귀를 내놓고, 그렇지 않으면 마을의 당나귀 한 마리를 가져가기로 한다.

자신만만한 젊은이 레자드와 무서운 재단사와의 한판 승부,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 무서운 재단사는 손님을 칭찬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배곱빠지게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 재주가 있다. 재단사는 그동안 이 두 가지 능력을 통해 손님들의 옷감을 몰래 훔쳐온 것이다.

어렸을 때 읽은 우화나 동화와는 달리, 이 책의 교훈은 들어나게 나타나지 않는다(적어도 내게는). 무서운 재단사가 전하는 교훈은 이렇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는 귀담아 들으면서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들을 줄 몰라."(36)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TV를 보느라 인생을 낭비하는 나의 모습이 대입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재밌게 지켜보느라 내가 여행할 기회를 놓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쓰느라 나의 내면의 소리에는 무심하게 되는 생활이 눈앞에 그려졌다. 

무서운 재단사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무서운 재단사가 자신들의 옷감을 훔쳐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찌해볼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당하기만 하는 동네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동네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하며 혼자서만 제일 잘난 것처럼 자신만만한 레자드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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