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철학자들의 서 -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숭고한 철학적 죽음의 연대기
사이먼 크리칠리 지음, 김대연 옮김 / 이마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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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으로 죽는 방법을 배운다면 우리는 죽음이란 현실에 직면해서도 자제력과 차분함,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14)

참으로 오만한 책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니 죽음 자체를 거부하지는 못할지라도 죽음이 가져다주는 공포에는 한 번 맞서보겠다는 심산이다. 죽기를 무서워하는 인간은 한 평생 매여 종 노릇한다고 하는데, 죽음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과 고요함을 유지하는 ’품격’을 갖춰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품격을 ’철학적 죽음’이라고 정의한다. "무엇인가에 도취돼 달아나고 벗어나려는 우리의 욕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철학적 죽음’이란 개념은 우리의 깨어 있는 정신의 힘을 보여준다."(12) 저자는 죽음의 공포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철학이 제공해준다고 믿는다(!). 저자는 철학을 이렇게 해석한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우리가 말하고 먹고 마시는 입에 달고 사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다."(13)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철인(哲人)이 곧 철인(鐵人)이라는 말인가? 

아무튼 철학적 죽음을 이상으로 여기는 저자는 그래서 철학자들의 죽음을 탐구했다. 철학자들은 어떻게 죽었는지를 통해 죽음에 대해 철학에서 배울 수 있는 적절한 태도를 발견하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말이다. 그리하여 철학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모아 <죽은 철학자들의 서(書)>라 이름 붙인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190여 명이나 되는 철학자들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더불어 철학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모은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와 철학자의 죽음을 직접 연결짓는다는 것이 어찌 보면 그럴 듯 하기도 하지만, 심각한 논리적 모순을 가진 연구 주제가 아닌가 하는 반론이 생긴다. ’철학자들의 죽음’이 곧 ’철학적 죽음’이라는 논리의 단순함이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 책을 통해 확인한 철학자들의 죽음은 그들의 철학적 사유와는 별개의 문제임을 알려 줄 뿐이다. 스크라테스 정도가 그나마 저자의 의도에 맞아떨어지는 철학적인 죽음이었다고나 할까. 또하나 기독교 성인들의 죽음은 종교철학자의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철학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신앙)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거창한 연구 의도를 떠나, 죽음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와는 별개로, 그저 철학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으면 이 책은 매우 재미있는 책이다. 주제도 독특하거니와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의 죽음을 모았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철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괴이하고도 어이없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 철학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소똥에 질식사하거나, 연회에서 소변을 참다가 방광이 터져 죽은 철학자의 이야기는 완전 블랙코메디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書)>를 통해 품격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얻어지는 결론은 이것이다. 품격있는 죽음이란 죽는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살아온 삶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언제 어떤 모양으로 우리를 덮쳐올지 모르는 죽음을 그나마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은 그저 오늘 심어야 할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열심과 최선으로 심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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